정부가 추진하는 일이 번번이 좌초하고 있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반대에 눌린 것도 있지만 정부 내에서조차 손발이 맞지 않아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다반사다. 정부 스스로도 훗날 욕을 먹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책임을 회피하는 일도 빚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위해 추진해온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 무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20일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우리금융 매각 성사를 위해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일부를 고치려던 계획을 접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은 '금융지주회사가 다른 금융지주회사를 인수하려면 소유 지분의 95%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고 돼 있다. 금융위는 시행령대로라면 우리금융 매각 입찰에 다른 금융지주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지주에 대해서는 이 규정을 50%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유효 경쟁 구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시행령의'95% 인수'규정을 법 조항에 못 박아 정부 마음대로 고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다급해진 금융위는 시행령 개정을 아예 보류하기로 했다. 정무위 관계자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조만간 국회를 방문해 시행령을 바꾸지 않겠다고 밝힐 테니 법제화만은 말아 달라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전봇대 뽑기' 차원에서 추진한 각종 규제 완화나 개혁 법안도 줄줄이 실패로 돌아갈 처지에 놓였다.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사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2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투자개방형(영리) 의료법인 도입도 3년째 허송세월하고 있다. 국민 편의를 위해 기획재정부 주도로 추진한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OTC)의 슈퍼마켓 판매 허용도 관련 이익단체 눈치를 보는 보건복지부(주무부처)의 반대로 '반쪽짜리' 신세가 됐다.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감세를 통한 성장'도 무위로 돌아갈 위기다. 야당보다 여당이 앞장서 법인세 · 소득세 추가 감세를 없었던 일로 사실상 결정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표심에 흔들리는 정치권을 제어하기는커녕 정부 스스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레임덕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종태/김형호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