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가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약가 인하를 밀어붙이면서 존립 기반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업체가 복제약 시장을 겨냥해 잇따라 국내에 진출하고 있는 것도 토종 제약회사에는 큰 위협이다. 이대로 가면 국내 제약사의 30% 정도가 조만간 구조조정을 통해 퇴출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와 있다. 업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가 인하가 추진돼 온데다 R&D 투자에 대한 정부 지원은 턱 없이 부족하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위기는 업계가 자초한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제약사들이 손쉬운 복제약 위주의 생산구조에 안주해왔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시장이 개방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동안의 사업행태도 이제는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물론 역사가 오래되고 엄청난 자본력을 자랑하는 거대 다국적 제약사와 직접 경쟁하기에는 국내 제약사들의 자본력이 너무도 약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국내 최대 제약사인 동아제약의 매출액이 세계 1위 제약사 화이자의 1% 정도에 불과하고 40여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와 규모면에서 엇비슷했던 유한양행의 매출액이 지금은 삼성전자의 0.58%에 불과하다는 점이 우리 제약업계가 걸어온 경과를 웅변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자동차 회사는 세계로 진출했고 전자회사는 세계인의 손에 한국제 휴대폰을 들려놓고 있다. 석유 한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가 한국이요 제조업이다. 제약산업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돌아볼 때가 됐다. 제약산업이 살 길은 이제라도 신약에 도전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있을 수 없다. 단독으로 안되면 업계가 뭉쳐서라도 신약에 도전해야 한다. 아무리 신약개발에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지만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이 15개에 불과하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결과다. 신약이 안된다면 복제약으로라도 세계시장을 뚫어야 한다. 업계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런 다음에라야 R&D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이 검토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