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57),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66),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67).각각 부산,경남 합천,하동 출신인 세 사람은 사석에서 연장자에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만큼 친분이 두텁다. 중학교(경남중) 선후배인 김 위원장과 강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각각 외화자금과장과 차관으로 일하면서 고난의 시기를 함께 겪었다. 눈빛만 봐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이심전심'의 관계다.

이 회장과 김 위원장,이 회장과 강 회장의 관계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은지주의 우리금융 인수 추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지난달 15일부터 김 위원장이 '불허' 방침을 발표한 지난 14일까지 이들은 치열한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섭섭함과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들은 무엇을 잃고 얻었을까.

김 위원장은 꺼져가던 우리금융 매각의 불씨를 되살려 놓은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여야 의원들이 유효경쟁 여건 조성에 필수적인 금융지주사법 시행령 개정을 봉쇄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산은지주 배제'는 고육지책이었던 측면이 있다. 그는 선배에 대한 '의리'보다는 현실을 택했다. 산은지주를 희생시켜 시행령 개정 동력을 확보했다. 금융당국은 의원들을 상대로 이해를 구하는 설득작업에 바로 착수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산은지주가) 링에 오르기도 전에 '너는 안된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시장에 맡기고 선입견을 갖지 말자"던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었다. 여기엔 청와대와 여당의 강력한 신호가 작용했다.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로 금융당국의 힘이 빠진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 부족'을 이유로 산은지주의 입찰을 막아 좌고우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 회장은 겉으로 보면 잃은 게 가장 많다. 우리금융 인수가 좌절됐고 산은 민영화도 요원해졌다. '산은지주를 세계 50위권의 챔피언뱅크,아시아의 파이어니어뱅크로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하기가 어려워졌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강 회장은 정책당국이 정공법을 선택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면서 고립무원이 됐다"며 "이 회장도 당초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 속에서 '산은지주 민영화'이슈를 부각시키는 부수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 회장에 대한 정치권의 강한 거부감 때문에 산은지주의 우리금융 인수 방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동정론이 일부에서 일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이 회장은 적절한 여론전으로 '산은지주의 우리금융 인수를 통한 민영화'를 좌절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강 회장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 과정에서 일부 임원들이 '산은지주도 좋은 대안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질책하며 내부를 단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침묵모드'로 전환하는 강온전략도 썼다.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날 때에는 "말이 말을 낳는다"며 산은지주를 언급하지 않는 노련함도 보였다.

하지만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이달 말 예정된 우리금융 매각 입찰이 또다시 불발된다면 이 회장은 이유야 어찌 됐건 민영화 지연에 따른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KB지주 등에 인수되는 것보다 산은지주가 오히려 낫다는 목소리도 있다. 강 회장은 우리금융 민영화가 실패할 경우 '산은지주 이외의 대안 부재론'에 힘입어 우리금융 인수 기회를 다시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류시훈/조재길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