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원전 · 가스 자주개발률이 지난해 사상 처음 10%를 돌파했다. 이는 국내 에너지 공기업들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세계 각국의 치열한 에너지 자원 전쟁에서 한국전력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 주요 에너지 공기업들이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해외 에너지 회사를 인수 · 합병(M&A)하는 것뿐 아니라 자원 부국의 광구를 직접 사들이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기업의 진출을 돕기 위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금융활동도 활발하다. 특히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적극 발굴,공기업들의 세계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세계 전력공급 책임지는 한전

한전은 필리핀과 중국의 전력공급 시장을 책임지고 있다. 한전은 필리핀에서 화력발전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 중이다. 실제 한전이 필리핀에서 건설한 말라야,일리한 등 4개 화력발전소가 필리핀 전력시장 중 1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일리한 발전소는 세계 최대 가스복합화력발전소이자 2003년 에너지 전문지 '파워'가 선정한 세계 톱12 발전소에 들어간다.

한전의 정보기술(IT) 자회사인 한전KDN은 최근 인도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인도 정부가 지난해 9월 '전력 현대화 사업 계획'에 따라 전력 손실률을 35%대에서 15%대로 낮추는 사업을 발주했기 때문이다. 인도 전력 시장 규모는 연간 12조원에 달한다.

한전의 전력설비 및 기타 산업설비의 정비 자회사인 한전KPS는 파키스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전력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들 국가는 발전소 부족으로 장기간 전력난을 겪고 있다. 때문에 한전KPS의 역할도 그만큼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전KPS는 이 틈을 이용해 현재 8%에 머무르고 있는 해외사업 매출 비중을 2020년에는 4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격적인 자원 확보

가스공사는 더 이상 액화천연가스(LNG)를 도입 · 판매만 하는 기업이 아니다. 세계적인 에너지 탐사 · 개발 · 생산 기업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가스공사는 현재 캐나다,동티모르,호주,오만 등 12개국에서 탐사 및 개발은 물론 생산까지 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기존 주력 사업이던 LNG를 비롯한 에너지원 다변화도 시도하고 있다. 캐나다와 러시아 등 북극권과 사막지역인 이라크에 진출해 석유와 비전통 가스인 석탄층가스 등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최근에 캐나다 MGM사가 보유한 '우미악 가스전' 지분을 확보한 것도 가스공사가 이룬 쾌거다. 막대한 자원이 잠자고 있는 북극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작은 거인'이다. 최근 3년 새 13개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총 누적 투자액(약 1조3000억원)의 79%를 이 기간에 투입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6대 전략 광물의 자주개발률은 2008년 23.1%에서 매년 증가,지난해 27%를 달성했다.

광물공사는 최근 멕시코 볼레오,볼리비아 코로코로,파나마 코브레파나 등 7개 중남미 구리 벨트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들 7개 구리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는 2015년에는 현재 6%에 불과한 구리 자주개발률이 30%로 급상승할 전망이다.

◆에너지 · 자원 확보 위한 금융지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국내 기업의 대형 플랜트 수주와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PF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PF는 개별 사업의 수익성을 담보로 투자비 등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산업은행은 전 세계 PF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국의 금융실적 데이터 업체인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정부가 민간 자금을 유치해 벌이는 사업의 PF 분야에서 BNP파리바(2위),산탄데르(5위) 등을 제치고 세계 1위다.

수출입은행은 1990년대 후반부터 PF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까지 35개국,59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수은은 특히 각국 ECA(공적 수출신용기관) 및 국제상업은행 등과 협력하면서 대형 해외 플랜트 사업에 대한 금융 전문성을 쌓고 있다. 이집트 ERC 프로젝트는 수은이 국제금융기구 및 각국 ECA의 참여를 주선해 성사시킨 아프리카 최대 PF 사업이다. 이 사업은 이집트의 민간 투자사와 국영석유공사(EGPC)가 카이로 인근에 연산 500만t 규모의 고급 정유제품 생산설비를 건설 · 운영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