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금감원 "소비자 권익보호 위해 필요"
보험업 등 금융회사 반발..재판권 침해 논란도

금융위원회가 소액 금융분쟁에 대한 금융회사의 소송 제기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소송 과정에서 소비자의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소송 제기를 금지하려면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어 도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송 제기가 금지되는 금융회사의 반발도 예상된다.

논란을 거듭하는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금융감독원과 분리·설치하는 방안의 경우 금융당국으로선 `결사반대' 분위기가 강했지만 최근 여론의 흐름을 역행할 우려가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불필요한 소송비용·시간낭비 줄인다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금융분쟁은 2만5천888건에 달했다.

대부분 기존의 판례를 적용해 조정 또는 기각됐고, 생소한 사건은 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돼 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금감원의 조정을 거치지 않거나 조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도 1천167건(4.5%)에 달했다.

금융위가 하반기 중 입법을 추진하는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가칭)은 금융회사가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소송이 금지되는 분쟁은 500만원 이하 소액사건이 유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송으로 소액을 구제받으려면 일반 소비자로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소송 비용이 더 비싸 민원을 취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따라서 소액사건에 대한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가 나오면 분쟁 당사자 가운데 한쪽인 금융회사에 대해서만 소송을 내지 않도록 강제하는 `편면적(片面的) 구속력'을 도입하겠다는 게 금융위의 구상이다.

금융회사가 분쟁조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소송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송지원제도'도 있지만, 지금까지 매년 예산만 편성됐을 뿐 실제 지원이 이뤄진 적은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액사건이라도 일단 소송으로 이어지면 생업에 종사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스럽기 마련이다"며 "정보가 축적되고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금융회사를 상대로 소비자가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금융회사 저항 예상..재판권 침해 논란
그러나 금융위의 의도대로 법률 제정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실질적인 영향을 받는 금융회사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험사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해 금융분쟁 민원은 손해보험(1만460건)과 생명보험(1만289건)이 80%를 차지했다.

여기에다 500만원 이하 소액사건으로 소송금지 대상을 제한하면 자동차보험이나 실손보험의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이 대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소송 제기가 마치 `횡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내부 법률검토를 거쳐 승소가 확실시되는 사건에 대해 주로 소송을 낸다"며 "가뜩이나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나빠진 상황에서 소송마저 금지하면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헌법이 보장한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무리 소액사건으로 제한한다지만 민간기구인 금감원에 사실상 재판권을 허용하는 셈이어서 논란의 소지도 있다.

물론 여기엔 소액사건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사 등의 일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등법원 판사는 "재판청구권에는 행정기관에 의한 자의적인 결정을 막는 취지도 있다"며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더라도 소송을 금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가 허위·과장광고나 불완전판매 등으로 챙긴 부당이득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 역시 어디까지가 부당이득이고, 과징금 부과 대상인지 정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금융회사의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 여부도 촉각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의 또 다른 논란의 축은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 여부다.

금융감독 관행을 뜯어고치기 위해 총리실 산하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TF)에서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일부 의원들도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따로 둬야 한다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를 한 기관에서 모두 맡는 게 이해 상충의 소지가 있다는 논리에다 금감원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여론도 등에 업었다.

오래전부터 제기된 별도의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치 필요성에 대해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융감독체제의 개편과 맞물린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면서 이런 입장이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애초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이 내용을 넣지 않았던 금융위는 TF의 논의 결과를 그대로 따르겠다는 쪽으로 자세를 낮췄다.

금융위 관계자는 "TF에서 찬반이 엇갈려 금융위의 입장을 단정적으로 밝힐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각 금융업법마다 제각각인 금융상품 규제를 한데 합친 이번 제정안은 상품 규제를 12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판매업, 대리중개업, 자문업 등 3가지 영업행태와 예금, 대출, 투자, 보장 등 4가지 상품특성을 조합한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홍정규 기자 koman@yna.co.kr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