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예금보험기금을 바탕으로 수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한다. 부실 저축은행을 구조조정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예보 관계자는 "부산 · 대전 · 보해 등 7개 저축은행을 정리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데다 하반기에 부실 저축은행이 추가로 나올 수 있어 예보채를 발행하기로 했다"고 7일 말했다. 그는 "빠르면 이달 중 예보 기금에 대한 신용평가를 받은 후 이를 토대로 채권을 발행할 것"이라며 "발행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수조원 정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보가 자체 기금을 기반으로 채권 발행을 추진하는 것은 2003년 1월 기금 조성 후 처음이다. 예보는 외환위기 이후 옛 조흥은행 등 부실 금융회사를 정리하기 위해 국가보증인 상환기금채권을 발행했지만 자체 기금을 바탕으로 한 예보채는 한 번도 발행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후 10여년간 금융회사들이 한꺼번에 도산하는 경우가 드물어 기금 보험료나 외부 차입을 통해 소요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초부터 저축은행이 무더기로 영업정지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자금 압박이 시작됐다는 게 예보 측 설명이다. 예보가 대지급해야 할 각 저축은행의 예금보험료(1인당 5000만원 한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다.

예보가 지난 4월부터 가동한 '상호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은 이미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각 금융회사에서 거둘 수 있는 연간 보험료 1조2000억원 중 45%(5400억원)를 특별계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부산 · 대전 등 부실 저축은행 7곳에서만 3조3688억원의 순자산 부족분을 메워줘야 한다.

예보는 올 하반기 추가 도산하는 저축은행이 나올 경우 구조조정 자금이 더욱 부족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계에선 올 8월께 추가로 퇴출되는 저축은행이 최소 3~4곳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저축은행이 6월 결산 이후 자본건전성 기준 등을 맞추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금융 당국 역시 강도 높은 검사에 착수할 예정이어서다.

예보는 외부 기관의 신용평가 결과가 나오면 예보위원회 의결을 거쳐 채권 발행 규모를 확정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향후 이자상환 능력까지 감안할 때 예보는 최대 15조원 규모의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