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상 끌어온 일반의약품(OTC)의 슈퍼마켓 판매가 사실상 무산됐다.

보건복지부는 국민 의약품 구입 불편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이달 중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어 현행 의약품 분류를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3일 발표했다.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에 필요한 약사법을 개정하지 않는 테두리에서 현행 의약품 분류를 조정해 일반의약품 가운데 안전성 우려가 작은 가정상비약 등을 약국 이외 장소에서 팔 수 있는 의약외품으로 전환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관련 논의가 정부 의도대로 진행될지 알 수 없는 데다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한 의약품 종류도 한정적이어서 의약품 구매 불편이 얼마나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안전성 등을 고려할 때 의약외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일반약은 박카스 까스활명수 위청수 파스 등을 포함해 대략 20여가지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들 일반약을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논의할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의사와 약사 중심(의사 4명,약사 4명,공익대표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심의위원회 논의가 국민 불편 해소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또다시 의사와 약사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2009년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과제 가운데 하나로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의약품 사용의 안전성을 유지하되 선진국에 비해 의약품 사용량이 많은 현실을 고려해 심야나 공휴일에 국민이 겪는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약 판매를 약사에 의해 약국에서만 할 수 있도록 한 약사법 규정을 들어 법 개정 없이 추진할 수 있는 방안만을 검토하다 약국 외 판매를 포기한 셈이다.

소비자 ·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약사단체의 눈치를 살피다가 국민 불편 해소 문제는 외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복지부 발표안은 불편 해소를 원하는 국민의 염원을 무시한 채 약사회가 약사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제시한 입장만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대한약사회는 밤 12시까지 운영하는 당번약국을 평일에는 전국 4000개,휴일에는 5000개를 운영하고 저소득층부터 단계적으로 상비약 보관함 보급 캠페인을 펼치기로 했다. 박인춘 약사회 부회장은 "국민의 복약 상담을 위해 24시간 상담전화를 개설할 예정"이라며 "이번만큼은 심야약국 운영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