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2008년 9월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통과시켰던 '소득세 · 법인세 인하'감세법안을 3년 만에 스스로 뒤집었다. 한나라당은 30일 의원총회에서 소득세율 인하를 없었던 일로 사실상 최종 확정했다.

법인세 인하 철회는 격론 끝에 판단을 유보했지만 철회 주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핵심으로 한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는 이제 반쪽으로 전락할 운명에 처했다.

◆누더기 된 소득세제

정부와 한나라당은 당초 소득세율을 소득 구간별로 2단계에 걸쳐 낮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연 소득 1200만원(과세표준 기준)이하 구간은 8%이던 세율이 이미 6%로 낮아졌다. 1200만~4600만원 구간은 17%에서 15%로,4600만~8800만원 구간은 26%에서 24%로 내려갔다.

8800만원 초과 구간 역시 지난해 35%에서 33%로 낮추기로 했으나 야당의 '부자감세' 공격에 눌려 2012년으로 적용시점을 2년 유예했다. 하지만 이날 의총에서는 이마저도 아예 없었던 일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득이 낮은 구간은 이미 세율이 낮아진 반면 높은 구간은 종전대로 세율을 적용하는 '이상한' 세법이 돼 버렸다. 더구나 여당은 한술 더 떠 과표 8800만원보다 높은 최고 구간(예컨대 1억원이나 1억2000만원)을 신설해 35%보다 높은 세율을 매기는 방안까지 검토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결정을 정책위에 일임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평소 감세에 반대해온 정책위 멤버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최고 세율 구간이 신설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세율 체계를 단순화하는 국제적인 추세에 비춰보면 우리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라며 "'부자감세' 논리에 여당조차 포획돼 감세를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당초 논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하도 장담 못해

법인세는 여당 내 친박계를 중심으로 인하 철회에 반대하는 의견이 만만치 않아 6월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정대로 현재 22%인 세율을 2012년부터 20%로 낮추는 일정을 유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당에서는 이미 법인세 인하 철회를 전제로 10조원의 재정을 확보해 서민층 복지에 투입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법인세 인하가 철회되면 3조2000억원가량의 세수가 더 들어올 것으로 추산된다. 여당은 여기에다 소득세 인하 철회에 따른 세수 증가분(5000억원가량)과 각종 비과세 · 감면 폐지 등을 통해 10조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여당 일각에선 법인세 인하를 철회하는 대신 임시투자세액공제(기업들의 설비투자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를 유지하는 형태로 '패키지 딜'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득공제율 인하는 없던 일로

소득세 감세 철회로 고소득층 세부담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민은행에 의뢰해 소득 수준별 근로소득세를 계산한 결과 내년 세율이 당초 33%에서 35%로 환원될 경우 총급여 1억2000만원(소득과표 기준 9770만원)을 받는 사람이 내야 할 세금은 2122만4500원으로 불어난다. 당초 33%로 낮췄을 경우 내는 세금(2021만2500원)보다 100만원가량(약 5%) 증가하는 셈이다. 자녀가 두 명이고 배우자 소득이 없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기본공제와 표준공제(700만원)만 적용해 계산한 결과다.

다만 정부가 내년 감세에 맞춰 축소하려고 했던 소득공제 및 세액공제 혜택을 다시 부활시킨다면 세 부담 증가폭은 다소 줄어들 수 있다.

정부는 2008년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을 35%에서 33%로 낮출 경우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 효과가 집중될 것이란 비판을 의식해 과표 8800만원 초과구간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현행 5%에서 1~3%까지 낮추기로 했었다. 50만원을 적용해온 세액공제도 총 급여액이 1억원을 넘는 사람에게는 내년부터 한푼도 받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소득세율 인하를 철회하면 인하를 전제로 낮추기로 했던 소득 및 세액공제도 부활된다"며 "그렇더라도 소득금액이 많을수록 세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종태/이호기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