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경북 왜관에 이어 경기도 부천의 캠프 머서에도 화학물질을 묻었다는 폭로가 나온 가운데 1978년 주한미군 부대에 다이옥신 제초제를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 하달됐다는 증언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왜관과 부천뿐 아니라 다른 미군 기지에도 화학물질이 매몰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고엽제 살포 시 주한미군이 한국인 민간인을 동원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파문은 더 확산되고 있다.

◆한국 다른 지역에도 고엽제 뿌렸다

25일 퇴역 주한미군 인터넷 사이트인 '한국전 프로젝트'에 따르면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미 육군 2사단 사령부에서 복무한 래리 앤더슨 씨는 "당시 2사단 전체 창고에 저장돼 남아있는 다이옥신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며 "우리 부대만이 아니라 전 부대에 내려진 일제 명령이었다"고 말했다. 미 2사단은 임진강 북쪽과 판문점 남쪽의 서부전선을 방어하는 육군 전투부대로,경기도 파주 연천 문산 동두천 의정부 등 10곳에 기지가 분산 배치돼 있다.

다이옥신 제초제를 전량 없애라는 명령이 하달된 1978년은 경북 칠곡 캠프 캐롤에 퇴역 미군 병사인 스티브 하우스 씨가 다이옥신계 제초제인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시점과 일치한다.

의무병으로 의정부 미군기지 캠프 스탠리에 복무했다는 앤더슨 씨는 "당시 비무장지대(DMZ)와 정확히 장소를 알 수 없는 여러 곳에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퇴역 미군 래리 킬고어 씨도 이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1960~1970년대에 걸쳐 DMZ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지역에도 광범위하게 고엽제가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고엽제 살포 시 민간인 동원 의혹

이처럼 고엽제 매립 의혹이 확산되자 환경부와 주한미군은 26일 용산 미군기지에서 한 · 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 회의에선 한 · 미 공동 조사단의 구성 방안과 기지 내 고엽제 매립 여부 조사 방법 등에 대한 협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 같은 한 · 미 양국의 신속한 진상조사 방침에도 불구하고 고엽제 매립 파문은 사그라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1971년 DMZ 고엽제 살포에 한국인 민간인이 동원됐다는 진술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녹색연합은 최근 강원도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지역에 사는 한 주민의 발언을 인용,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민간인이 DMZ 내 고엽제 살포 작업에 동원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주민은 "1971년 DMZ 시야 확보를 위해 불모지 작업을 하면서 지역 군부대의 요청으로 주민들이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다"며 "현장에서 미군이 고엽제 살포를 감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작업은 보호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진행됐으며 작업 참가자들은 해당 물질이 고엽제인 줄 모른 채 단순한 제초제라는 말만 들었다고 이 주민은 전했다.

25일 국방부에 따르면 1968년 4월15일~5월30일과 1969년 5월19일~7월31일 두 차례에 걸쳐 DMZ 일대에 에이전트 오렌지 2만1000갤런,에이전트 블루 3만8000여갤런 등의 고엽제가 살포됐다.

강경민/김우섭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