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에 닿는 흙의 느낌이 차다. 서늘한 기운이 종아리를 타고 허벅지까지 올라온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땅의 기운,흙의 느낌인가. 물기를 머금은 황토는 축축하지 않고 촉촉하다. 마른 흙을 밟을 때보다 느낌이 더 편하다. 이따금 황톳길에서 벗어나 잔돌을 밟을 때마다 통증이 온몸을 들썩이게 하지만 그런 감각마저 신선하고 낯설다. 너무도 오래,익숙하게 신발을 신고 다닌 탓이다.

신발은 흔히 발을 보호하고 걸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맨발 옹호론자인 다니엘 호웰 미국 리버티대 생물학과 교수는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신발은 발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에 해롭다고 주장한다.

대전시 대덕구 장동에 있는 계족산(431m) 황톳길.산 중턱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 14.5㎞에 황토를 깔아놓은 길인데 전국의 몇몇 맨발 걷기 코스 중에서 최근 가장 인기가 높다. 지난 13~15일 열린 맨발축제에는 외국인 700여명을 포함해 2만여명이 다녀갔다. 소문이 나서면서 대전 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맨발 체험을 하러 찾아온다.

이유가 있다. 이 지역 소주회사인 ㈜선양의 조웅래 회장은 6년 전부터 해마다 전라도에서 황토를 실어와 맨발 걷기 코스를 만들었다. 깔아놓은 황토는 비가 오면 많이 쓸려 내려가기 매년 두 차례 이상 덤프트럭 80대 분량의 황토를 새로 깐다. 맨발로 접촉해야 하는 흙이어서 황토 선택도 까다롭다. 마사토가 거의 없어 점성이 좋고 색깔도 고와야 한다. 덕분에 계족산 황톳길은 걷기에 편하고 순하다. 신발을 벗고 그 황토에 발을 디뎌 본다.


1~2km쯤 걷자 발바닥 '화끈'…세척대서 물에 담그면 피로 '싹'

계족산 황톳길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색다른 시설물이 있다. 대여섯 명이 나란히 앉아서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꼭지와 신발 보관함이다. 여기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황톳길로 향한다. 물론 더 위로 올라가서 맨발 걷기를 해도 된다. 황토는 길의 한 쪽 절반에만 깔려 있다. 신을 신고 걷는 이들을 위한 배려다. 입구부터 황토가 깔려 있지만 산허리 둘레길까지는 1㎞가량을 걸어올라야 한다. 여기까지는 다소 가파르고 바닥에 잔돌이나 바위도 밟으며 지나야 한다.

신발의 보호를 받던 발은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잔돌을 밟을 때마다 몸을 움츠리고 깜짝 놀란다. 터럭 하나의 고통이 몸 전체를 움직인다더니 발바닥의 통증도 마찬가지다. 잔돌을 밟을까,뾰족한 나뭇가지라도 있을까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발은 선뜻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여기에 맨발 걷기의 이점이 있다. 발밑을 보고 걷노라니 날마다 보면서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발을 다시 보게 된다. '아하,내 발이 이렇게 생겼구나. 맨발로 땅을 밟으면 발바닥과 발가락이 이렇게 힘을 받는구나. ' 최근 번역 · 출간된 다니엘 호웰 교수의 책 《신발이 내 몸을 망친다》(청림라이프 펴냄)에 따르면 인간의 몸에 있는 206개의 뼈 중 52개가 발에 있다. 발의 무게는 체중의 3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몸 전체 뼈의 4분의 1이 모여 있는 셈.발마다 26개의 뼈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온갖 형태의 하중을 떠받친다.

발이 디딘 땅도 다시 보게 된다. 황토는 마른 곳에선 흙먼지로,젖은 곳에선 점성이 좋은 찰흙처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통에 차츰 익숙해지면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보행속도가 떨어진 대신 길섶의 온갖 풀과 꽃,잘 생긴 나무와 이따금 드러나는 산 아래 풍경까지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신발을 신고 다닐 땐 오로지 내가 중심이었지만 맨발로 걷기 시작하자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와 연결된 존재로 다가온다. 호웰 교수는 그래서 "맨발이면 세상은 더 단순해지고 친절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맨발로 다니면 지구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 더 친밀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했다.

통증은 처음에는 발바닥을 찌르듯이 자극하지만 1~2㎞쯤 걷고 나니 발바닥에 열이 나고 발 전체가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처음 맨발로 걷는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러닝머신도 맨발로 걷고 집 근처에서 산책도 맨발로 한다는 국내 최초의 서양인 한의사 라이문트 로이어 자생한방병원 국제진료센터 원장도 그랬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맨발로 걸은 지 15분 후에는 발바닥이 후끈 달아올랐다"고 한 적이 있다. 뒷굽이 있는 신을 벗고 나니 걸을 때 몸의 균형이 달라져 종아리에 경미한 통증 같은 것도 느끼게 된다. 이럴 땐 황톳길 곳곳에 마련된 세척대에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가주면 한결 시원하고 상쾌하다.

황톳길에는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맨발로 걷는 사람,신을 신고 가는 사람,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 다양하다. 순환로 곳곳에는 지난 맨발축제 때 전시했던 설치미술 작품들이 색다른 모습으로 자연과 어우러진다. 이정표와 출발지점으로부터의 거리 및 약도,쉼터,운동기구 등도 여러 곳에 마련돼 있다. 그 중 한 안내판은 맨발걷기의 효능으로 혈액순환 · 소화기능 개선,두통 · 불면증 · 피로 해소,당뇨 · 치매 예방,기억력 향상 등을 꼽고 있다.

황톳길에서 만난 50대 주부 안묘화 씨는 "산 아래에 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오는데 맨발로 걷고 물에 발을 담그면 피로회복이 잘된다"고 했다. 동행한 박춘자 씨는 "10년 이상 계족산을 다녔는데 맨발걷기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도 못 고치던 화병도 맨발로 걸으면서 가라앉았고,고질병처럼 괴롭히던 폐와 기관지,신장의 문제들도 해결됐다는 것.

황톳길 한 바퀴를 사진도 찍으면서 걷고 나니 4시간 반 넘게 걸렸다. 초짜가 너무 욕심을 낸 것일까. 발이 화끈거리고 종아리도 좀 아프다. 하지만 기분만은 더 없이 상쾌하다.

대전=글 · 사진/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