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메일을 주셨다. 21일은 부부의 날이니 부인에게 꼭 꽃 한 송이라도 보내라고.아! 부부의 날이 있었구나. 아내가 알면 엄청 서운해하겠지만 전혀 몰랐다. 우리는 23년 전 중매로 만나 세 번 본 뒤 결혼했다. 처음엔 서먹했다. 신혼여행 가서 사진 한 통을 다 못 찍었다. 인적이 드문 7월 초 설악산으로 갔으니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시작한 부부관계가 어언 사반세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애가 둘 태어났다. 해병대 상병으로 고생 끝이라고 하는 큰 애와 매일 밤 12시가 넘어 귀가하는 고3 수험생 둘째가 있다. 나와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주고 받는다. 둘 사이는 자연스럽게 부부이면서 그리고 친구가 됐다. 아주 친한 친구.나는 아내에게 고생을 많이 시켰다. 지방의회 의원을 할 때는 생활비를 한번도 갖다 준 적이 없었다. 아내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살림을 꾸려 나갔다. 그후 지금까지 정치인 아내,학교 교사,그리고 엄마 1인3역을 하고 있다. 마음 한켠엔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고생을 시켜서인가. 더 친한 것 같다.

우리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정말 예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둘째 애가 다섯 살 때 그러니까 지금 그 애가 18세이니 13년 전 쓴 시가 있다. '다섯 살짜리 아들과 나는/매일 아침 똑같은 대화를 한다/아빠는 아가를 얼마나 사랑할까/하늘 높이까지/그러면 아가는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지/태양 끝만큼/나와 아들은 낄낄대며 서로 끌어안고/이불 위를 뒹군다/내 가슴에 묻고 있는 아들 머리위로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미소 머금은 얼굴이 보인다/아버지도 예전엔 기억에는 없지만 나와 이렇게 하셨으리라.'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지금 모시고 같이 살고 있다. 여든을 넘기셨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엄청 고생하셨고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신 지 한참 되니 참 불쌍한 어머니시다. 지금도 어머니는 내가 최고다. 요즘은 몸이 많이 아프시다. 그러면서도 젊어지고 싶은 마음은 똑같은가 보다. 어버이날에 동생이 사드린 옷을 몇 번 입어보신다. 그냥 입을까 바꿀까. 몇 번이나 마음이 변하시나 보다. 바쁘다 보니 귀가가 늦어 어머니와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다. 어머니에게 따뜻하게 잘해드리지도 못한다.

부부의 날에 꽃 선물 하라는 말에 아내 생각이 나면서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어머니께 내가 잘해드리고 있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 몇 분의 일이나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나. 어머니 마음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는가. 행여 아들이 어렵게 느껴지게 한 적은 없는가.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다가오는 부부의 날에 아내에게 줄 꽃을 준비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께 드릴 예쁜 꽃을 하나 더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아버지 산소에도 꽃을 가지고 가서 뵈어야겠다.

정장선 < 국회의원 js21m@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