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삼성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서초동 삼성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이제 와 생각하니 이건희 회장님의 출근은 '쇼잉(showing)'이 아니었네요. "

17일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에서 만난 한 직원이 한 얘기다. 좀처럼 사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 회장의 출근 배경을 비로소 이해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특유의 위기의식이 발동한 거죠.그래서 사업 하나하나를 직접 들여다보고 독려해야겠다는 판단을 하신 것 같아요. "

요즘 삼성전자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 긴장감이 높다. 무선사업부 개발담당 임직원들은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업 진척상황을 챙긴다. 반도체 사업부에도 짙은 위기감이 드리워져 있다. 일본의 엘피다가 D램공정을 25나노미터(㎚)로 전환한다는 발표,인텔이 세계 최초로 입체(3D) 반도체 기술을 개발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자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쟁사들의 혁신을 "별 것 아니다"며 무시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징후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선 엘피다의 기술력,인텔의 의도와 전략을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들의 발표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애플이 향후 대(對)삼성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지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도 전망이 엇갈린다.

[취재여록] 삼성이 조금 이상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위기요인 탐색-시뮬레이션-로드맵 설정'이라는 삼성 특유의 조기경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요즘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는 "졸면 죽는다"는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의 표현처럼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환경에 놓여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무료인터넷전화업체인 스카이프를 전격 인수한 것도 많은 글로벌 경영자들의 머리 속에는 존재하지 않던 변수였다. 구글의 운영체제(OS)통합과 크롬 노트북 출시 또한 전 세계 전자업체들의 판도변화에 중요한 요인들이다.

삼성은 과연 경쟁사들의 움직임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전략 · 전술적 변화로 수용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스마트폰 시대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예전의 반성은 그저 한 차례의 탄식에 불과했던 것일까. 앞으로 서초동 사옥을 찾는 이건희 회장의 발길은 이래저래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강영연 IT모바일부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