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님,그랜저 ○○모델 풀옵션으로 하나 사주세요. "(금융감독원 부국장 정모씨) "내가 아는 자동차 판매원에게 가서 일단 직접 사세요. 그러면 제가 나중에 현금으로 드리지요. "(오문철 보해저축은행장)

검사하는 금융감독원 직원과 검사당하는 저축은행 사이 은밀한 거래 현장의 재구성이다. 정씨(구속)는 2009년 3월께 보해저축은행 검사에서 불법행위를 눈감아주는 등 부실검사를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구체적인 모델명뿐 아니라 풀옵션이어야 한다는 점까지 세세하게 요구했으며,오 행장은 정씨가 직접 승용차를 구입하게 한 뒤 나중에 4000여만원을 현금으로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저축은행을 검사한 금감원 직원들이 검사 대상인 저축은행 간부들에게 노골적으로 필요한 금품을 제시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12일 밝혔다. 검찰은 금감원 검사 직원들의 직접적인 금품 요구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정황을 잡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검찰 "검사하는 곳마다 요구 가능성"

보해저축은행을 수사하고 있는 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김호경)는 그랜저 승용차 대금 명목으로 4000만원을 받은 정 부국장을 구속했다. 검찰은 또 은행 차량이었던 그랜저 승용차(시가 약 1500만원)를 건네받고 보험사 직원인 자신의 부인 실적을 위해 보험 가입을 요구한 김모 검사역(3급)에 대해서는 13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모 전 부국장(검사반장)은 "이사비용을 달라"는 등의 명목으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검찰은 검사역 김모씨가 2009년 보해저축은행 검사 외에도 과거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사를 검사하면서 비슷한 수법으로 금품을 받아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부산저축은행에서도 보험 가입 강권을 한 사실을 이미 밝혀냈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 다른 저축은행을 검사하면서도 김씨가 금품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어 조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다른 금감원 직원들도 관행처럼 검사하는 저축은행마다 부실검사 대가로 금품을 받아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구속된 이모 대전지원 수석검사역(2급 · 2009년 당시 검사반장)은 1억여원을 받고 감사원의 감사 시작 전 부산저축은행 쪽에 금감원 기밀문서까지 유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통상 검사반장급 이상의 간부들은 저축은행 측으로부터 1억~3억원을 받았으며,실무자들도 수천만원씩 수수했다.

◆끝없는 모럴 해저드

부산저축은행그룹 임직원들이 영업정지 전인 지난 1~2월 사이 약 31억원의 퇴직금을 챙기려 했다는 의혹이 나와 검찰이 추가로 조사 중이다. 썩은 임원진들의 '모럴 해저드'에 끝이 없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그룹 부실화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주요 대주주 임원들은 지난 1~2월 최고 8억원대의 퇴직금을 정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 그룹 부회장이 약 8억5000만원,박연호 그룹 회장은 8600만원.김민영 부산저축은행 대표이사가 영업정지 하루 전 약 8억원의 퇴직금을 정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 65명도 퇴직금 정산대열에 가세,임직원 97명 중 42명이 퇴직금을 계산했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예금보험공사 측은 "부산저축은행그룹의 4월 가결산을 위해 산정한 퇴직금 추계액으로,실제로 지급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한편 삼화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잠적한 은행 대주주 이모씨의 구속영장이 이날 발부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수사관들로 검거조를 편성해 본격적으로 이씨 검거에 나설 방침이다.

이고운/부산=김태현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