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글로버(32 · 미국 · 사진)의 지능적인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미국 PGA투어 웰스파고챔피언십 4라운드가 열린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골프장(파72) 18번홀(파4).1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던 글로버의 티샷이 당겨지면서 왼쪽으로 날아가더니 페어웨이 왼쪽 실개천을 넘어 급경사지에 앉아있던 한 갤러리의 왼쪽 엉덩이에 멈췄다.

그런데 글로버가 드롭을 하고 치려는 순간 경사지에 있던 볼이 스스르 굴러 내려오는 게 아닌가. 지난주 취리히클래식 최종일 1타차 선두를 달리던 웹 심슨이 그린에서 홀아웃하려다 볼이 움직이는 바람에 1벌타를 받은 상황과 비슷했다.

골프 규칙 18-2조 b항에서는 어드레스를 취한 다음 볼이 움직이면 1벌타를 부과한다. 어드레스를 판단하는 기준은 클럽헤드가 지면에 닿았는지 여부에 따른다. 심슨은 퍼터를 지면에 대는 바람에 1벌타를 받았다.

그러나 글로버는 어드레스를 취하면서 클럽을 지면에 대지 않았다. 경사지라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면서 지면에 대지 않은 채 샷을 시도한 것이다. 이 같은 지능적인 플레이로 글로버는 1벌타를 면했고 양발 끝 내리막에서 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오버했으나 칩샷을 홀 2m 지점으로 보낸 뒤 파 퍼팅을 성공시키며 1타차 선두로 경기를 먼저 끝냈다.

글로버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클림슨대 동창이자 골프팀 동료였던 조너던 비어드(33)는 18번홀에서 4m 버디를 떨구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둘은 주니어 시절부터 100회 이상 함께 라운딩한 '절친'이다. 둘 다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플레이하는 것도 닮았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것.이날 오후 3시8분,뇌종양으로 사망한 세베 바예스테로스를 추모하는 1분간의 묵념이 진행됐다. 바예스테로스는 "골프장에서 누군가를 동정하려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라.네가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가 너를 죽인다"는 명언을 남긴 명선수.

그의 말처럼 글로버는 첫 연장전에서 이미 두 차례 연장전 승리 경험이 있는 비어드를 가볍게 제압했다. 비어드의 티샷이 오른쪽 벙커에 빠진 뒤 두 번째 샷마저 그린 왼쪽 해저드 경계선으로 떨어져 간신히 '3온'을 하며 보기를 범하자 글로버는 침착하게 '2온2퍼트'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투어 통산 3승째.우승상금은 117만달러(12억6200만원).글로버는 또 9년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나흘 연속 60대 타수(67-68-69-69)를 기록한 선수가 됐다.

케빈 나는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5위에 올라 시즌 4번째 톱10 진입에 성공했다. 한편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은 13번홀에서 지정된 티잉 그라운드보다 앞에서 티샷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골프규칙 11-4조는 경기자가 티잉 그라운드 밖에서 플레이한 경우 2벌타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디봇 자국 조사와 비디오 판독에서 명확한 위반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해링턴은 벌타 없이 넘어갔다. 이 덕분에 그는 공동 9위에 올랐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