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00만년 전 인류와 신체 조건이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노보와 침팬지는 영장류 중에서는 인간과 가장 가깝다. 하지만 새끼에 대한 수컷의 태도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다수의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다부다처제'의 무리생활을 한다. 수컷들은 짝짓기에는 적극적인 반면 어느 암컷이 자기의 새끼를 낳았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새끼에게 먹이를 갖다주거나 놀아주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투스,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를 거쳐 약 15만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초기 인류인 '호미닌'의 발달 과정을 보면 자식을 보살피는 인간 아버지의 진화론적 기원을 추정하게 된다.

직립보행으로 골반에 부담이 가해지면서 과거처럼 펑퍼짐한 골반을 갖지 못하게 된 호미닌 여성은 점차 작은 머리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기 시작한다. 결국 침팬지 새끼와 달리 인간의 아기는 태어난 후에야 비로소 머리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다른 종(種)의 새끼에 비해 생존능력이 한참 뒤처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호미닌 아기는 지금의 아기처럼 1년 가까이 혼자 힘으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이고,다른 종보다 더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여성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게 된 양육 과정은 남성과 여성이 장기적인 부부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일처일부제'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남성은 한 여성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식량 조달에 전념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느끼게 된다. 남성이 도구를 이용해 '고위험 고수익'의 사냥활동에 나서는 동안 여성은 채집 등 안정적인 생산활동에 기여하면서 성과를 공유하는 '노동의 성적 분화'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처일부제'가 보편화되고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보살핌이 뚜렷해졌을 것이란 가설이다. 오직 3~5%의 포유류 종 수컷만이 이렇게 가족을 돌본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아버지의 탄생》은 진화론과 비교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 아버지라는 존재를 살펴본 책이다. 새끼에 대한 아버지의 직 · 간접적 보살핌을 인류 진화의 과정 속에서 밝혀냈는데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유인원 등 다른 종과의 비교는 물론 서로 다른 민족과 지역 간 비교문화기록이나 역서도 다양하게 참고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아버지들이 '무책임하다'거나 '양육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비난받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저자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의 유전자(DNA) 속에서 수컷과 암컷은 각기 '짝짓기 노력'과 '양육 노력'으로 특화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기나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보면 기껏해야 200만년 전부터 아버지들이 자식 양육에 나섰고,현대의 아버지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시간을 자식에게 할애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한다.

이 책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의미도 다양한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었다. 왜 유목 · 농경사회보다 수렵 · 채집 사회에서 남성이 어린 자식을 더 많이 돌보는가,남성이 자식의 생물학적 아버지일 때 자식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 등이다. 아버지가 되면서 겪는 생리적 · 정서적 변화,자식에게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한 설명도 유용하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