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벼랑 끝에 섰다.

올해초부터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의 후폭풍이 시간이 지날수록 파괴력을 더해가면서 금감원의 목을 조르는 형국이다.

영업정지 과정에서의 불법예금인출 논란과 끝없이 이어지는 전ㆍ현직 임직원의 구속은 저축은행 사태가 당국이 주장하는 대로 단순한 대주주의 비리 때문이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한치의 틈도 없어야 할 감독당국의 신뢰가 기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금감원을 직접 방문한 것도 지금 당장 금감원이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란 문제의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비등하는 비판여론 = `경제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에 대한 외부비판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다양한 해외사례와 논리를 동원해가면서 막강한 권한을 유지했다.

어디까지나 학계와 금융권 일각 등 외부에서 제기된 비판이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방패막이었던 정부가 직접 금감원의 환부에 칼을 들이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부산저축은행의 금융 비리 사건과 국내 저축은행에 대한 관리 감독 현황 등을 보고받고 저축은행 비리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금융당국의 분발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대주주의 부도덕성도 문제이지만, 금융당국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셈이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전날 국무회의에서 금감원의 변화를 주문했다.

김 총리는 "금융당국과 은행간 전관예우 관행이 (이번 사태에) 일부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회 일각의 지적이 있다"며 "공정사회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그동안 금융당국 퇴직자가 민간 금융회사에 재취업해오던 관행에 너무 관대한 기준을 적용했던 측면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특히 "총리실과 관계부처는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방향으로 각계 의견도 수렴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과 관행을 확립하도록 지혜를 모아달라"고 말했다.

◇금감원 변화의 방향은 =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감원은 정면돌파 카드를 내놓았다.

금융회사와의 유착으로 인한 직원 비리가 문제가 되니 파격인사를 통해 직원들을 물갈이하고, 부실감독 논란은 감독권 강화로 해결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개혁으로는 신뢰회복이 힘들다는 게 현재의 여론이다.

금융감독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금감원 고위 관계자도 "금융 환경은 하루가 멀다하고 급변하는데 금융시스템의 시계는 아직도 10년전에 맞춰진 채 정지한 측면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일부 저축은행은 자산규모가 지방은행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감독시스템은 자산규모 2천억~3천억 정도의 상호신용금고 시절에 맞춰져 있다는 것.
과거의 감독 시스템을 갖고 아무리 저축은행을 들여다봐도 대주주들의 탈법과 비리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오래전부터 금감원이 독점하고 있는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ㆍ검사권한을 다변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상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체계 개편 차원에서 지난 2008년 말 처음 논의가 시작된 한은법 개정안은 2009년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금감원과 금융위원회, 소관 국회 상임위인 정무위 등의 반발로 현재까지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에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인정하는 경우 금융기관을 직접 검사할 수 있다', `금감원에 대해 검사결과에 따라 금융기관에 대한 시정 및 제지를 요청할 수 있고 금감원은 이에 응해야 한다'는 직접검사 항목이 담겨있다.

한은법 개정안은 감독기관이 늘어날 경우 금융회사의 업무부담이 늘어난다는 금융당국의 반대논리에 막혀 논의가 중단된 상태이지만 재논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법사위 소속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부산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한국은행의 간접 조사권이 있었을 경우와 없었을 경우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법제사법위에 계류된 한국은행법 통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영업정지가 된 금융회사만 단독으로 조사할 수 있는 예금보험공사의 권한강화도 예상된다.

금감원은 지난 2일 저축은행 검사를 담당하는 인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금감원과 예보가 교차 검사를 하는 것과 더불어 부실 우려가 있는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예보의 단독 조사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