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한 상장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이익이 들쑥날쑥하고 일일이 주석을 확인해야 하는 등 큰 혼란도 극심하다. 미국 일본 등이 IFRS 도입을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한국만 새로운 제도를 적용한 것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적지않은 혼란과 고통을 투자자와 금융회사 국세청 등 정보 이용자들이 겪기 시작한 것이다.

IFRS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본산지인 유럽에서도 아직까지 논쟁만 거듭하고 있다. 2013년까지 전세계에 통일된 IFRS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는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원래 오는 6월 말까지 통일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미국은 지난달 이 시한을 다시 연장했다. IFRS를 관장하는 IASB와 미국 기준을 결정하는 FASB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상품과 리스,수익인식,가치평가 등 기본 이슈에서 의견 차이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13년 도입은 자연스레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IFRS의 골격 자체가 다시 흔들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영국 의회는 지난달 상원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IFRS 적용을 거부해 버렸다. 영국은 2005년 서둘러 IFRS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전면 도입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실익도 없을 뿐더러 영국 전통방식의 회계처리가 중소기업에는 더 옳다는 것이다. 핵심국의 하나인 일본은 지금도 지켜보자는 입장이 전부다. 앙리 드 카르티에 전 AXA 회장은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아예 IFRS를 지목하고 있다. IFRS 도입을 주도한 찰리 맥크리비 EU 집행위원조차 시장이 비이성적일 때 IFRS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토로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IFRS를 전면 적용하고 있다. 일부 학자와 회계업계가 주도하고 지난 정권이 미국 기준을 버리고 IFRS를 채택할 것을 성급히 결정한 결과다.

IFRS의 핵심은 소위 '공정가치(fair value)'의 적용이다. 취득 원가나 장부가 회계방식이 아니라 공정가치를 평가해 장부에 기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국가별로 업종별로 이해관계는 여전히 극명하게 엇갈려 있다. 금융계는 시장가치 문제로,건설 · 조선업계는 진행중인 사업에 대한 수익인식 문제로,해운업계는 용선에 대한 부채인식 문제로 반발하고 있다. 연결재무제표를 주재무제표로 사용하기 때문에 기업 실적이 왜곡될 수 있다는 등의 문제도 쏟아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은 올해부터 IFRS 방식으로 장부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했고 1분기 실적이 바로 그 기준에 의해 발표되고 있다. IFRS 의무화를 재촉해왔던 한국 금융당국이 미국이나 일본의 상황을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회계업계는 새로운 회계방식을 적용하면서 회계인프라 구축과 컨설팅 등으로 수천억원의 돈을 벌었다. 만일 미국의 입김이 반영되면서 IFRS 핵심기준이 크게 변경되거나 아예 채택이 미뤄진다면 한국은 회계장부 전부를 다시 작성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회계는 자본주의 인프라다. 비교가능성,객관성,신뢰성이 없다면 이는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책임져야 할 중대 사태가 터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