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산을 품은 포구 몽산포를 찾아간다. 몽환적인 이름 때문에 오랫동안 뭇 시인들의 시의 소재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몽산포를 이 잡듯 뒤져도 몽산은 없다. 이 지명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몽대(夢垈) 마을과 동산리를 합쳐 만든 지명이기 때문이다.

굳이 몽산이 있건 없건 구애받을 일은 아니다. 몽산포라는 이름을 입안에서 가만히 중얼거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꿈꾸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몽산포로 가는 길 초입,청계산 기슭의 죽사(竹寺)라는 폐사지에서 몽산리석가여래좌상을 만난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세가 세상의 어느 부처보다 반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목구비가 없다. 형상 없음으로 형상 있음에 대해 설하는 셈이다.

◆몽산포에 몽산은 없다

독립운동가 문양목(1869~1940) 생가터를 지나 몽산포해수욕장에 닿는다. 아득히 펼쳐진 백사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모래 바다다. 뒤편의 울창한 솔숲이 파도소리를 베개 삼아 낮잠이나 한숨 자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한다. 밀물의 시간이다. 먼바다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물결들이 피곤한듯 포구에 발을 뻗고 쉬고 있다.

서해안 최고의 주꾸미 산지답게 포구 안 여기저기에는 소라 껍데기가 주렁주렁 달린 주꾸미잡이용 소라방 뭉텅이들이 쌓여 있다. 주꾸미는 알이 꽉 찬 봄이 제철이다. 항구의 풍경을 등지고 방파제로 나아간다. 방파제에는 출조하지 않은 20여 척의 낚싯배가 매여져 있다.

'난 예 풍경을 눈에 꼭 담고 상상한다. / 폐선이란/ 낡아 저무는 모습이 아니라/ 저물어선 안 될 걸/ 환기시키는 어떤 힘이라는 것을./(…)/ 나도 언젠가는 저처럼/ 누굴 그립게 끌어당겼다 놓았다 하는/ 몽대항 폐선이 되리란 꿈을 꾼다'는 김영남의 시 '몽대항 폐선'을 떠올리며 포구의 끝에서 끝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몽대항 어디에도 폐선은 없다. 다만 등대 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폐선을 발견한다. 폐선처럼 버려진 안목도라는 섬을.나도 몽대항 폐선처럼 늙어가고 싶다. 생애 끝까지 저물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을 지키면서….낮술에 취한 사람 몇몇이 괭이갈매기처럼 포구를 서성인다. 걸어다니는 '몽산'들인가.

◆백사장항과 황도붕기풍어제의 고장

안면대교를 건너 창기리 백사장항에 닿는다. 대하와 꽃게의 산지로 유명한 백사장항은 활기차다. 수산물직판장에서 회귀를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르기 전 연안에서 잡혀온 웅어들과 어선에서 컨베이어를 타고 쏟아져 들어와 바닥에서 숨을 할딱거리는 우럭들을 만난다.

부둣가에 서서 건너편 드르니항을 바라본다. 백사장항과 드르니항은 조선 인조 때 삼남지역의 세곡 운송의 편의를 위해 안면곶을 절단해 섬을 만들기 전까지는 서로 이어진 육지였다.

황도붕기풍어제의 고장 황도로 향한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풍어교를 대체할 새 황도교 공사가 한창이다. 나루개의 넓고 시꺼먼 갯벌이 펼쳐진다. 1980년대 초만 해도 황도는 안강망 어선들이 북적거리던 섬이었다. 매년 정월 초면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비는 당제를 벌이기도 했다. '순풍에 돛 달고 만경창파로 떠나세/ 돈 실러 가세 연평 바다로/ 에헤 어허쿵 에헤 어허쿵'하며 어디선가 붕기풍어타령 중 '배 나가는 소리'가 들려올 법도 하건만 나루엔 바람에 흔들리는 빈 배들뿐이다.

큰마을 앞과 옥섬 사이에 펼쳐진 '앞갯벌'에서 한 아낙이 갯벌 구멍에서 솟아나는 민물에 빨래를 하고 있다. 이국적인 펜션들로 가득한 황도에서 만나는 흔치 않은 이 토속적 풍경이 반갑다.

◆'쭉쭉빵빵' 정당리 소나무숲의 안면송

다시 안면읍으로 가는 77번 국도를 탄다. 산기슭이 온통 15~20m 정도 되는 소나무로 빼곡한 정당리 소나무숲에 닿는다. 옹이 없이 미끈한 안면송이 자태를 뽐낸다. 안면도를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감관을 두고 관리한 덕택에 살아남은 소나무숲이다. 자유공원 서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가면서 숲을 바라본다. 길 안쪽 소나무보다 길가 소나무가 훨씬 모양도 좋고 잘 자란 것은 이목이 꺼려지는 길가라서 벌채가 어려웠기 때문인지 모른다.

정당리 동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 안면암을 찾아간다. 부교를 밟으며 여우섬과 조구널섬 사이 갯벌에 세워진 부상탑을 향해 간다. 스테인리스 골격과 동판으로 만든 이 7층탑은 상륜부를 제외한 높이가 11m이다. 썰물의 시간,탑은 떠오르지 않는 뗏목을 타고 하릴없이 갯벌을 지키고 있다. 밀물이 되면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처럼 둥둥 떠오를 풍경을 보지 못한 채 떠난다. 부디 이 탑을 세운 원력대로 다시는 태안에 기름 유출 같은 재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조선시대 말에 만든 승언리상여를 찾아간다. 상여는 승언2리 산기슭 아래 상여각 속에 있었다. 13세에 급사한 고종의 서장자 완화군 이선을 운구했던 상여다. 완화군의 스승이었던 도승지 김병년이 안면도 주민들을 동원해 상을 치른 후 그 상여를 상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130년이 지났지만 상여의 채색은 전혀 바래지 않았다. 상여의 네 귀에 세운 귀면상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기다림에 지쳐 마침내 망부석이 되다

번잡한 안면읍 시가지를 그냥 지나쳐 방포항으로 간다. 방포항은 방포해수욕장과 꽃지해수욕장 사이에 있다. 포구의 시커먼 갯벌에는 배들이 널브러져 있다. 바닷가에 줄지어 선 모감주나무군락을 들여다본다. 높이 2m가량 되는 모감주나무 400여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모감주나무는 6~7월에 하늘을 향해 원뿔 모양으로 가지에 달려 피는 황금빛 꽃이 아름다운 나무다. 모감주나무는 씨껍질이 물에 떠다닐 수 있게 가벼운 코르크질로 돼 있다. 이 숲은 모감주나무 씨앗의 여행의 산물인지 모른다.

물 빠진 갯벌에 우뚝 선 할미할아비바위가 보인다. 밋밋한 수평선에 악센트를 주려고 세운 조형물 같다. 해상왕 장보고의 명에 따라 전쟁터로 나간 승언이라는 군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내 미도가 변한 망부석이라고 한다. 물 빠진 갯벌을 터벅터벅 걸어서 할미할아비바위로 간다. 갯벌에는 '일일어부'들이 바지락 등을 캐느라 부산하다.

기다림은 상록이다. 잎이 지는 법이 없다. 할미바위는 기다림의 증표처럼 불모의 몸에 몇 그루의 소나무를 키우고 있다. 할미바위 몇 걸음 앞에는 제법 우거진 숲을 가진 할아비바위가 있다. 민중의 바람을 이야기로 구현한 것이 전설이다. 세상의 모든 지아비는 저렇게 바위가 되어서라도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전설이 있어 할미할아비바위 앞의 일몰 풍경은 어느 곳보다 설렌다. 누가 이 섬을 안면도라 하는가. 삶 혹은 풍경에 대한 설렘이 남아 있는 한 안면이란 없는 것을….내 불면의 목록에 올릴 몇몇의 풍경을 각인하면서 안면도를 떠난다.


주꾸미 샤부샤부 별미…가족과 바지락잡이
자연휴양림 산책도


맛집

남면 몽대포구는 주꾸미 집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4월23일부터 5월8일까지 열리는 '제3회 태안 몽산포항 주꾸미축제'는 전야제를 시작으로 '바지락,맛조개잡이 체험' 등 갯벌체험행사와 '주꾸미 잡이'를 체험할 수 있는 '어살체험 행사' 등이 펼쳐진다.

태안군 남면 몽산리 686의 20(몽산포항) 몽대횟집(041-672-2254)은 주꾸미 샤부샤부로 소문난 집이다. 싱싱한 주꾸미 맛도 일품이지만 회를 시키면 기본 상차림으로 나오는 꽁치,우럭조림,조기구이 등도 별미다. 주꾸미볶음 3만5000원,꽃게탕(소) 5만원,갑오징어찜 3만5000~4만원,주꾸미 샤부샤부 1㎏ 4만5000~5만원.

여행정보

태안읍에서 안면도 방면으로 30㎞ 떨어진 안면도 자연휴양림은 총면적 42㏊에 울창한 천연보호림과 임목육종장,굴거리나무 등과 화목류,단풍류,유실수 등 3만1670그루(374종)의 식물을 산과 바다와 더불어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전통정원을 비롯해 생태습지원,지피원,식용수원 등 테마원이 있는 수목원도 빼놓을 수 없다. 안면송을 이용해 배 만드는 모습과 붕기풍어제 재현도 볼 수 있다.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숲속의 집에서 잠을 청할 수 있다. (041)674-5019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