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원회 시절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했던 '비즈니스 프렌들리' 모토는 현 정부 정책기조의 방향타가 됐다. 이에 걸맞게 '공공개혁,규제 완화'가 정책 프레임으로 제시됐다. '이명박=친시장'이란 등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이후 현 정부의 이념적 정책기조는 혼선을 거듭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에 이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행사' 발언이 청와대의 뜻으로 해석되면서 혼란은 더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이 28일 수석들과 티타임을 갖는 자리에서 "현 정부의 정체성은 친시장"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 대통령은 "개인이 불쑥불쑥 시장에 혼선을 줘선 안 된다"고 두 사람을 질타했다.

◆기조의 변화인가?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에서 변화를 보인 것은 2008년 가을 닥친 금융위기 때였다. 이 대통령은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기회가 닿는 대로 투자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지만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참패는 정책 방향을 돌린 결정타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사회 깃발을 들고 나왔다. 청와대가 "우리의 뜻과 전혀 다르다"고 했음에도 정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 발언은 현 정부의 정체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차에 곽 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행사 발언이 튀어나오자 '연금 사회주의'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선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나는 친시장주의자"라는 발언을 하자 다시 '비즈니스 프렌들리' 쪽으로 기조 변화를 꾀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 발언은 이 대통령을 반시장주의자로까지 낙인 찍을 수 있어서 이를 서둘러 차단하고 이념적 혼선을 명확히 정리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 25일 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대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제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친시장주의에서 한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며 정책기조 변화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 애초부터 친시장 마인드에서 달라진 게 없는데 친서민을 강조하다 보니 반시장주의라는 오해를 받게 됐다는 얘기다.

◆연기금 발언 놓고 알력

이 대통령이 이렇게 정리하고 나선 데는 곽 위원장의 연기금 발언을 두고 여권 내부에서 알력 조짐을 보인 것과 무관치 않다. 곽 위원장의 언급이 있은 이후 청와대 경제정책 라인과 비경제 라인의 반응은 다소 달랐다. 경제 파트에선 공개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불만을 표출했다. 한 고위 정책 참모는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확대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고 학자적 측면에서의 곽 위원장 개인 의견에 불과하며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보고가 안 된 사안"이라고 차단막을 쳤다.

또 "곽 위원장의 말대로 하게 되면 관치"라고 못을 박았다. 곽 위원장의 개인플레이로 규정한 것이다. 특히 백용호 정책실장은 이례적으로 '반시장적 정책'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곽 위원장은 "청와대 내에서도 적지 않은 동조자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비정책 분야의 한 고위 참모는 "연기금 관리에 대해 투명하게 거버넌스(관리체제)를 세우면 (주주권 행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곽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도 곽 위원장에 동조했다.

이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는 현 정부 정책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개인들이 불쑥불쑥 나서 시장에 혼선을 줘선 안 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곽 위원장과 정 위원장을 질타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렇지만 이 대통령이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한 대기업 견제' 제안과 '초과이익공유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지는 불분명하다. 단순히 문제 제기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일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다음주 경제 5단체장과의 회동에서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