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화폐 남발이 대공황·닷컴 버블·금융위기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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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와 신용의 이론/루트비히 폰 비제스 지음/김이석 옮김/한국경제연구원/상 410쪽,하 394쪽/각권 2만원
미시·거시경제학 최초 통합…'경기순환 이론' 논리적 설명
미시·거시경제학 최초 통합…'경기순환 이론' 논리적 설명
모처럼 묵직한 고전이 번역됐다. 역작이다.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준엄한 반론이며 화폐 현상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이해시켰던 고전 중의 고전이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은 1912년 독일어로 처음 출판됐다. 영어책은 1934년에 영국에서,1953년엔 예일대 출판부에서, 1971년에 FEE(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에 의해 다시 인쇄됐고 1981년 리버티 펀드가 로스바드의 서문을 추가해 다시 발간했다. 이번에 김이석 박사가 번역한 책은 바로 1981년에 발간된 책이다.
《화폐와 신용의 이론》은 경제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책이다. 이 책은 화폐이론과 한계효용 및 가격의 일반이론을 통합한 것이다. 화폐이론은 이른바 거시경제학이고 한계효용 및 가격 이론은 미시경제학의 영역이다. 바로 이 양대 부문을 최초로 통합한 것이 이 책이다. 우리는 그것을 미시에 기초한 거시(The microfoundation of macroeconomics)라고 부른다.
미제스 이전에는 미시와 거시가 분리돼 있었다. 오스트리아 학파조차도 그랬다. 애덤 스미스를 포함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을 해결했던 그들 역시 화폐에 관해서는 개인행동과 무관한 모형을 가지고 설명했다. 어빙 피셔까지도 '물가수준'과 '유통속도'의 이론을 전개했지만 개인행동에 기초하지도 않았고,미시적 분석의 체계로 통합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미제스에 의해 마침내 개인행동에 기초한 통합분석의 경제학이 화폐와 분리되지 않고,미시 거시 구분 없이 하나가 됐다. 미제스는 한계효용이론을 화폐의 수요와 공급에 통합 적용했다. 즉 어떤 상품의 가격이 소비자의 한계효용에 의해 결정되듯 화폐단위의 가격,즉 구매력도 같은 방식으로 결정된다고 봤다. 미제스는 화폐의 공급이 증가하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고전학파의 수량이론에 동의하지만,화폐가치가 떨어지는 정도는 화폐의 한계효용에 발생한 변화와 그로 인한 현금잔액에 대한 일반대중의 수요에 달려 있음을 보여줬다. 현대 화폐이론은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미시경제학과 경기순환을 통합 설명한 사람도 미제스였다. 당시만 해도 많은 경제학자들은 호황과 불황,인플레이션,공황 등을 올바르게 설명해 내지 못했다. 미제스는 화폐와 신용의 양에 의해 경기변동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밀어내면서 물가를 올리고 인위적으로 이자율을 낮추게 되면 그 결과 과잉 투자가 발생하고,마지막 단계에 가서는 불안과 불황이 초래된다는 것이었다. 즉 경기변동의 주요인은 중앙은행의 통화팽창정책에 있다는 것이다.
2008년에 일어난 금융위기는 바로 그 실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낮은 이자율 정책이 엄청난 자원을 주택부문으로 이동시키면서 거품을 만들었다. 2003~2007년 미국의 전 산업 평균 설비투자와 건설투자의 증가율은 각각 7.25%와 7.08%였다.
그러므로 미국의 금융위기가 유효수요 부족 때문에 일어났다는 케인스식 분석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도 마찬가지다. 당시 연준리는 1995년 6월부터 2000년 5월까지 52%나 통화량을 상승시켰다. 닷컴 주식은 폭등했고 웹프로그래머와 실리콘밸리의 부동산 그리고 인터넷 도메인네임 가격이 급등했다. 많은 경기순환 현상은 오직 미제스의 이론에 의해 정확하게 설명된다. 미제스의 경기변동이론은 20년이나 지난 후에 나온 케인스의 이론보다 훨씬 논리적이며 경기변동 현상을 훨씬 잘 설명한다. 1936년 발간된 《일반이론》에서 케인스는 경기변동,즉 디플레이션의 원인을 불안정한 기업투자로부터 기인하는 총수요 부족으로 본다. 그러나 케인스는 왜 경제가 갑자기 총수요 부족을 경험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루카스 역시 이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최근 소득불평등에 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미제스는 통화량을 증가시키면 새로운 화폐 획득에 시차가 생기고 시차에 따른 화폐 구매력이 달라지기 때문에,화폐 획득 시점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 간에 생산성에 근거하지 않은 소득격차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약점이다. 그러나 천천히 읽다 보면 현실 경제를 읽는 진정한 눈이 뜨일 것이고 경제학 연구에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것이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교수 · 객원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