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칠레 산호세 광산의 붕괴 사고로 33명의 광부가 700m 아래 갱도에 갇힌 지 보름이 지났을 때 칠레 정부는 이들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며칠 뒤 광부들은 구조 드릴에 매단 쪽지를 통해 자신들의 생존 사실을 알렸고 지하에 갇힌 지 69일 만에 모두 건강하게 구출됐다.

이러한 기적적인 생환 사례는 국내에도 있었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을 때 당시 열아홉 살이던 박 모씨는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 17일을 버티다 구조됐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들,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벤 셔우드의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민음인 펴냄. 원제 'The survivors club')는 극적인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사례를 통해 위기 상황에 적용할 '생존의 교훈들'을 끌어낸 책이다.

현재 미국 ABC 뉴스의 사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비행기 추락, 지하철 화재, 황산 테러, 아우슈비츠 수용 등 여러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 비밀과 이후 이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해낸 방법을 들려준다.

저자는 '생존 심리학'의 저자인 영국의 존 리치가 말한 '10-80-10 법칙'을 빌려 사람들이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 오직 10%만이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한다.

대다수인 80%는 놀라고 당황해 판단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나머지 10%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엄청난 압박에 노출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진다. 식은땀을 흘린다. 기분이 나빠진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각 협착', 이른바 터널 시야를 경험한다. 전방만을 주시한다. (중략) 간단히 말해, 위기에 직면하는 첫 순간 우리 대부분은 조각상으로 변한다."(62쪽)

실제로 1987년 11월 31명의 사망자를 낸 런던 지하철 화재 당시, 지하철 역으로 쏟아져나오는 탈출자들과 연기를 보면서도 많은 통근자들이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지하철 역으로 걸어들어갔다고 한다.

누가 먼저 "뇌 정지나 분석 마비에서 빨리 회복해 충격을 떨쳐 내고 어떻게 해야할 지 판단하는" 지가 생존자와 희생자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순간적인 판단이 생사를 가르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엔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나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생존 여부를 결정 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신앙이 상황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살아 있는 안네 프랑크'로 불린 에디 에거의 경우도 확신이 생존으로 이어진 경우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오늘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내일은 풀려날 거야.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그녀는 믿는다."(202쪽)

이 책을 통해 생존자들의 마음가짐 뿐 아니라 비행기에서 가장 안전한 좌석과 같은 구체적인 '생존 정보'도 전하는 저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의 교훈'은 "매 순간을 살아가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황량한 빙하 위에서도, 병실에서도, 자신의 집에서도 하나의 호흡을 최대한으로 음미하면 다만 존재할 뿐인 상태가 정말 살아 있는 것으로 고양된다.

당신이 20세든 50세든 80세든, 또는 그 이상이든 충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견고한 의지야말로 가장 중요한, 하지만 자칫 잊기 쉬운 생존자의 교훈이다."(387쪽)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mih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