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맞벌이 부부들이 직장에서 겪는 팽팽한 긴장감을 밖에서 해소하지 못하고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적잖은 가정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40세 직장여성인 P모 팀장은 몇 달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자주 짜증을 내는 증상을 보였다. 직장인과 가정주부를 겸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었다. 중요한 회의와 야근이 잦아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을 보살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남편은 집안살림에 소홀하다며 불평하고 종종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져 언성을 높이는 일이 늘었다. 회사 직원에게 공연히 화를 내는 일도 잦아졌다. 그렇다고 미혼 시절처럼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 시간조차 없었다. 남편과 얘기하면 상처만 돌아올 뿐 해결이 묘연했다.

P씨 남편도 회사에서 상사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집에 가면 쉬고 싶지만 아내가 없을 때가 많고 어쩌다 집에 있더라도 아내의 짜증을 받아낼 길이 없었다. 아이들의 성격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도 아내 탓이라고 느끼게 됐다. 이 때문에 술을 자주 마시고 퇴근시간이 돼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평온하고 자신을 지지해줘야 할 가정이 '적과의 동침'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부부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보다는 서로 간에 오고 가는 대화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부부는 대화 중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선 안된다. 애초에 비난과 비교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줘야 하지만 남편과 아내 모두 정서적 균형감이 깨진 상태에서 누가 먼저 따스한 말을 건넬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를 중재할 만한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게 필요하다.

이에 앞서 취해볼 노력은 부부가 공동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중 운동이 적격이다. P씨 부부는 최근 저녁에 동네 운동장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얘기할 시간이 많아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부분도 늘어났다. 신체적 건강과 더불어 정신 건강이 개선됐다. 또 남편은 대학시절 배운 기타를 다시 시작해 매주 한 번 동호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정을 더 보살피고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됐다.

스트레스가 상당한 수준으로 관리되면 대화 내용을 수정하는 게 필요하다. 우선 배우자의 단점과 실수에 대해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배우자로부터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듣고 출근하는 날,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오랜 기간 인내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게 필요하다.

비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식을 망치고 싶으면 실컷 비교해도 된다. 마찬가지로 배우자를 친구나 옆집 사람과 비교하는 표현은 가정을 무너뜨리는 재앙이 된다. 배우자가 사랑스럽고 같이 있을 때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해낼 수 있다면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배우자를 남과 비교하려는 마음을 한번 두번 연거푸 참는다면 사랑스러운 말들이 넘쳐날 것이다. 부부가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면 자식들에 대한 인성교육은 따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예로부터 가정이 평온하면 밖에서도 잘 나가게 돼 있다.

이화영 <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