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48) 자산(子産) "불처럼 이글거리만 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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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겸허'를 배운 名재상
춘추시대의 약소국 가운데에 정(鄭)나라가 있었다. 강대국인 북방의 진(晋)나라와 남방의 초(楚)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데다 군사와 경제,교통의 요충지였기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26년간 별다른 무리없이 나라를 잘 다스린 재상이 있었으니 바로 자산(子産)이다.
자산이 정나라 재상이 된 과정은 《사기》의 '순리열전'에 나와 있다. 정나라 소군(昭君)이 총애하던 서지(徐摯)를 재상으로 삼았으나 나라가 어지러워져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친하지 못하고,아버지와 아들이 화합하지 못해 자산을 재상으로 삼게 됐다. 물론 자산이 순탄하게 재상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당시 정나라는 칠목(七穆)이란 문벌이 다스리고 있었다. 자산은 이 칠목 중의 하나인 자국(子國)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산은 아버지로부터 무술을 배웠고 천문과 역법도 익혔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나랏일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좌전》 양공 8년 조 기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자산의 아버지 자국이 다른 칠목의 하나인 자이(子耳)와 함께 채(蔡)나라를 침범해 마공자섭(馬公子燮)을 포로로 잡아와 의기양양했는데 신중한 성품의 자산은 오히려 근심을 표하며 아버지에게 은밀히 말했다.
"작은 나라가 문치(文治)를 하지 않고 무력만 숭상하면 이보다 더 큰 환란은 없습니다. 초나라가 성토하기 위해 쳐들어오면 그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초나라에 복종하면 진나라 군대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진과 초 두 호랑이가 협공해올 것이니 지금부터 최소한 4~5년간은 편안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이 말을 들은 자국은 아들에게 화만 낼 뿐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은 예언대로 흘러갔다. 그해 겨울 초나라가 쳐들어왔고 진나라 또한 이의 견제를 목적으로 쳐들어왔다. 정나라는 몇 년간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어린 자산의 통찰력은 곳곳에서 번득였다. 또 다른 사건은 기원전 563년에 있었던 정나라 내란이다. 자사(子駟)가 일을 주모해서 노(魯)나라 임금 희공(僖公)을 독살하고 군주 못지않은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자 자사에 반발하는 사람이 많아졌고,이런 와중에 자사를 제거하기 위한 자공(子孔)의 반란이 일어났다.
자공은 간계를 써서 반란세력을 부추겼고,급습을 당한 자산의 아버지 자국을 비롯해 자사와 자이가 죽음을 맞게 됐다. 이런 위급한 시기에 아버지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본 자산은 자교와 힘을 합쳐 군대를 동원,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래도 남은 세력을 갖고 있던 자공은 9년 동안이나 국정을 농단하다 살해됐다.
경(卿)에 임명된 자산은 겸허하게 처신하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우(子羽)나 비심(裨諶) 같은 인재를 등용해 정치를 논했고,그들의 의견이 타당하면 정책에 반영했다. 국제적인 문제에 적극 나서 예로써 명분 있는 외교를 펼친 그는 국가 간의 신의를 쌓고 정나라의 내란을 평정한 공으로 마침내 상경(上卿)에 올랐다.
누구나 훌륭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지만 참다운 정치가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재 · 보궐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물의 덕성을 본받으려 한 자산처럼 스스로를 낮추며 백성을 하늘같이 여기는 참 정치인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자산이 정나라 재상이 된 과정은 《사기》의 '순리열전'에 나와 있다. 정나라 소군(昭君)이 총애하던 서지(徐摯)를 재상으로 삼았으나 나라가 어지러워져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친하지 못하고,아버지와 아들이 화합하지 못해 자산을 재상으로 삼게 됐다. 물론 자산이 순탄하게 재상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당시 정나라는 칠목(七穆)이란 문벌이 다스리고 있었다. 자산은 이 칠목 중의 하나인 자국(子國)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산은 아버지로부터 무술을 배웠고 천문과 역법도 익혔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나랏일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좌전》 양공 8년 조 기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자산의 아버지 자국이 다른 칠목의 하나인 자이(子耳)와 함께 채(蔡)나라를 침범해 마공자섭(馬公子燮)을 포로로 잡아와 의기양양했는데 신중한 성품의 자산은 오히려 근심을 표하며 아버지에게 은밀히 말했다.
"작은 나라가 문치(文治)를 하지 않고 무력만 숭상하면 이보다 더 큰 환란은 없습니다. 초나라가 성토하기 위해 쳐들어오면 그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초나라에 복종하면 진나라 군대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진과 초 두 호랑이가 협공해올 것이니 지금부터 최소한 4~5년간은 편안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이 말을 들은 자국은 아들에게 화만 낼 뿐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은 예언대로 흘러갔다. 그해 겨울 초나라가 쳐들어왔고 진나라 또한 이의 견제를 목적으로 쳐들어왔다. 정나라는 몇 년간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어린 자산의 통찰력은 곳곳에서 번득였다. 또 다른 사건은 기원전 563년에 있었던 정나라 내란이다. 자사(子駟)가 일을 주모해서 노(魯)나라 임금 희공(僖公)을 독살하고 군주 못지않은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자 자사에 반발하는 사람이 많아졌고,이런 와중에 자사를 제거하기 위한 자공(子孔)의 반란이 일어났다.
자공은 간계를 써서 반란세력을 부추겼고,급습을 당한 자산의 아버지 자국을 비롯해 자사와 자이가 죽음을 맞게 됐다. 이런 위급한 시기에 아버지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본 자산은 자교와 힘을 합쳐 군대를 동원,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래도 남은 세력을 갖고 있던 자공은 9년 동안이나 국정을 농단하다 살해됐다.
경(卿)에 임명된 자산은 겸허하게 처신하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우(子羽)나 비심(裨諶) 같은 인재를 등용해 정치를 논했고,그들의 의견이 타당하면 정책에 반영했다. 국제적인 문제에 적극 나서 예로써 명분 있는 외교를 펼친 그는 국가 간의 신의를 쌓고 정나라의 내란을 평정한 공으로 마침내 상경(上卿)에 올랐다.
누구나 훌륭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지만 참다운 정치가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재 · 보궐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물의 덕성을 본받으려 한 자산처럼 스스로를 낮추며 백성을 하늘같이 여기는 참 정치인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