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있는 휘닉스스프링스.2009년 8월19일 개장한 '신흥 명문'이다. 이 골프장에서는 잘 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한수 배우겠다는 자세로 임하는 게 낫다. 핸디캡보다 10타 이상은 더 나오는 곳이다.

마운틴 코스 티잉그라운드에 섰더니 위협적인 벙커와 페어웨이의 굴곡에 눈이 어지럽다. 마음도 오그라든다. 당연히 샷도 위축된다. 홀마다 무슨 벙커가 이리도 많은지.게다가 대충 쳐서는 나올 수 없을 만큼 깊다. 시동 끄고 굴려서 그린에 올릴 생각은 접어야겠다.

캐디가 말해준다. 여기는 벙커가 총 108개라고.금세 '108번뇌'를 떠올린다. 사실 골프장 내 벙커는 107개다. 정문 입구에 조성된 그린과 벙커 모형물까지 합쳐서 108개다. 그나마 벙커는 양반이다. 그린을 보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운동장만한 그린을 구겨놓은 것 같다. 대형 파도가 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빠르기에 초점을 맞춘 것일까. 공이 그린에 올라갔다가 다시 굴러내려오는 홀도 많다.

페어웨이 잔디는 꼿꼿하게 서 있는 안양중지라 공을 쳐내기는 쉽지만 그린 주변은 벤트그라스다. 풀이 짧아 뒤땅치기에 딱 좋다.

레이크 코스는 마운틴보다 좀 낫다. 마운틴에서 혼을 빼고 레이크로 내려오니 아늑한 안방에 들어온 듯하다. 여성적인 포근함마저 느껴진다. 마운틴에서 이미 버린 몸.스코어보다 스토리에 더 관심이 간다. 이 골프장을 설계한 사람은 짐 파지오다. 그는 세계 100대 코스 중 13개를 만든 톰 파지오의 형이다. 짐도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을 100대 코스에 올려놨다.

휘닉스스프링스 측은 '골프의 전설' 잭 니클로스가 설계한 휘닉스파크에 이어 최고의 설계가가 만든 코스를 조성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의도를 읽었는지 이곳을 방문한 짐이 지형을 살펴보더니 "세계 100대 코스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4번홀을 마치고 그늘집에 앉아 5번홀을 바라본다. 이 홀은 짐이 만든 트럼프 인터내셔널 5번홀과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호수와 벙커,그린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코스 곳곳에는 오래된 '석물(돌상)'이 있다. 자세히 보니 휴지통도 항아리다. 클럽하우스 옆에는 한옥연회장이 마련돼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 100대 코스에 도전하는 셈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코스로 나올 때 보이는 대형 태극기도 그런 의미일까.

8번홀 '아일랜드 그린'은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한폭의 풍경화를 이룬다. 홀아웃하고 9번홀로 와보니 35개의 석물이 갤러리처럼 8번홀 그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운틴과 레이크 코스를 돌며 혼쭐이 났지만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니 '108번뇌'가 사라지는 것 같다.

이천=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