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현장속으로] 벤츠 스포츠카 타는 구두업체 안토니 직원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세 사는 대표, 직원 행복 위해 승마 등 럭셔리 레포츠 지원
편한 구두로 매출 年 20%씩 증가
편한 구두로 매출 年 20%씩 증가
경기도 고양시 설문동에 있는 구두업체 안토니.이 회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벤츠 스포츠카다. 5500cc짜리 'SLK 55 AMG'다. 대당 1억원이 휠씬 넘는 고급 스포츠카다. 엔진 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이 차는 뜻밖에도 직원용이다. 이 회사 종업원들의 연봉은 일반 중소기업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들은 억대 연봉자도 꿈꾸지 못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스포츠카 운전,승마,수상 스키 등이다. 김원길 안토니 대표(50)가 배려해준데 따른 것이다. 최근엔 통기타 합주부도 생겼다. 비록 자신은 노모를 모시고 일산의 전셋집에 살지만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일을 찾아나선다. '직원의 행복'이 그의 사업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토니를 창업해 '발이 편한 구두(Comfort Shoes)'분야에서 손꼽히는 업체로 키웠다. 어떻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그의 구두 인생이 시작된 것은 10대후반부터.충남 당진의 가난한 농삿군의 6남매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졸업후 1979년 상경해 영등포 로터리 부근의 한 구둣방에 취직했다. 가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님 발의 칫수를 재고 가죽을 자른뒤 접착제로 붙이고 꿰매 구두를 만들었다. 1980년대에는 기능경기대회에 나가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남들같으면 기뻐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날 저녁 너무 서러웠다"고 그는 술회했다. 구두 하나 만큼은 누구보다 잘 만들 자신이 있었는데 금메달을 놓쳤기 때문이다. 부산 태종대로 내려간 그는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잔을 기울이니 파도와 기암괴석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렇게 멋진 경치가 만들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그런데 기껏 몇년 구두를 만들고 정상에 올라서려고 한단 말인가. " 그는 자리를 박차고 다시 상경했다. "이왕 구두를 만들거면 세계 1인자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1991년 서울 원효로에서 직원 3명을 데리고 창업했다. 사업은 기술만으로 되는게 아니었다. 1994년 법인전환후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다. 제품은 팔리지 않았고 자금난이 극에 달했다. 불면증에 시달렸다. 차를 몰고 한강으로 투신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의 대답이 가슴을 찔렀다. "야 임마,죽는다고 뭐가 해결돼.열심히 돈을 벌어 갚아야지.넌 정말 무책임한 놈이야."
맞는 말이었다. 이때 한줄기 희망의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디자인보다 편한 구두를 찾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발이 편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불티나게 팔렸다. 빚도 갚고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들여다 편하면서 미적 감각도 뛰어난 제품을 제작하자 백화점 입점 요청이 줄을 이었다. 자체 브랜드인 안토니(ANTONI)와 이탈리아 브랜드인 바이네르(VAINER)라는 2개 브랜드로 시장을 공략했다.
안토니의 종업원은 본사와 유통점을 합쳐 약 200명,매출(소매 기준)은 연간 약 400억원에 달한다. 최근 5년간 매출신장률이 연 15~20%에 이를 정도로 성장가도를 달린다.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직원들에게 더 잘해줄 수 없을까 고민했다. 스포츠카를 구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회사 뒤편 나대지를 빌려 승마장으로 꾸몄다. 여름에는 한강과 청평호수에서 수상스키를 탈 수 있게 했다. 겨울엔 스키타러 다닌다. 최근엔 통기타 동호회를 결성토록 했다.
김 대표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주다보니 이직률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만 베푸는게 아니다.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매년 1000만원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하며 청소년 4명을 골프 꿈나무로 키우고 있다. 국내 최고 강사들을 초청해 '행복한 인생 만들기'라는 주제로 고양시민을 대상으로 강좌도 열고 있다.
그의 꿈은 혼이 담긴 구두로 해외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최근 패션 중심지 밀라노와 상하이를 다녀왔다. 그는 "1년정도 심사숙고한 끝에 우선 한두군데 해외매장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있다. 편한 구두에 관한한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는데다 숙련된 직원들이 든든한 원군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기전문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