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그 악몽 잊고 싶다"
2008년 12월 대한민국 국회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국회에 전기톱과 해머가 등장하고 여야의 거친 몸싸움으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정권이 명운을 걸고 추진한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비준안 상정을 둘러싼 난장판이었다.

이런 난리통 속에 2009년 4월 상임위를 통과한 한 · 미 FTA 비준안이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번역오류로 외통위에 재상정돼야 하는 처지다. 2년 전 외통위 소속으로 상임위 통과의 주역이었던 해당 의원들은 그 때를 '악몽'으로 기억하면서도 이번 오류 사태에 대해선 황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문학진 민주당 의원에겐 그 사건이 악몽 그 자체였다. 외통위 민주당 측 간사였던 자신이 해머로 외통위 출입문을 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지난 2년간 두고두고 그를 괴롭혔다. 벌금도 물었다. 문 의원은 17일 소회를 묻는 질문에 아예 "그 사건에 대해선 묻지도 말라"고 했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여야 의원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그 난장판을 만들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라며 "난 한 · 미 FTA에 질렸다. 이젠 외통위 위원도 아니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게 한 한나라당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위원장을 맡았던 박진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정부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온 데 대해선 대단히 유감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비준안 처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려는듯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박 전 위원장은 비준안 통과 당시 민주당의 최규성 김우남 의원과 강기갑 민노당 의원 등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른 끝에 무선마이크로 비준안 직권상정과 상임위 통과를 주도했다. 박 의원은 "상황은 안타깝지만 내가 아직 어떤 내용이 잘못된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오류 부분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치명적인 것인지 미비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좀 더 확인해야 입장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윤상현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가 일하는 걸 보면 정말 짜증이 난다"며 "한 · 미 FTA는 영어로 협상했기 때문에 오류가능성이 낮은데 외교부에서 그것조차 번역할 전문인력이 없다고 한다. 그 난리를 쳐서 상임위 통과까지 끝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구동회/김형호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