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은행의 여신담당 임원은 13일 "은행과 기업은 신뢰관계를 기본으로 거래를 해야 한다"며 "하지만 요즘은 어떤 기업을 믿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당히 우량한 업체로 평가했던 삼부토건이 사전 협의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며 "앞으로 담보 물건이 없을 경우 신규 대출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법정관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재무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거래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대출금에 대해 즉각 100%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회생절차가 개시돼도 20~50%의 충당금을 적립해야 한다. 담보를 많이 확보하고 있더라도 이자율을 낮춰야 하고,최악의 경우 원금 손실도 불가피하다.
은행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지난해 말 폐지된 데다 통합도산법 이후엔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이 최근 추세"라며 "채권단과 협의하지 않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분위기에서는 채권단이 경쟁적으로 여신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최근 들어 심각한 자금난을 겪는 것은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만기가 속속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PF 대출은 대부분 만기가 3년으로,2008년에 이뤄진 대출 상환기일이 올해 도래한다.
은행의 PF 대출 규모는 작년 말 기준으로 38조7000억원에 달하고,저축은행 PF 대출 규모는 12조4000억원에 이른다. 저축은행 PF 대출의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9%,연체율은 25%에 달할 정도로 부실이 누적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총 45곳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곳 늘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