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본을 감싸안은 손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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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추진력ㆍ인간미 모두 갖춰
지진피해 '통큰 기부' 자산 될것
지진피해 '통큰 기부' 자산 될것
16세 때 미국에 가기 전까지 손정의 사장에게 최대 콤플렉스는 한국 국적인 채 야스모토(安本)라는 이름으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였다. 어릴 적 링컨 전기를 읽고,미국의 흑인은 노예처럼 취급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가 미국의 비행장에 내렸을 때 깜짝 놀란 것은 흑인들이 밝은 옷을 입고 당당하게 담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나는 왜 그리도 작은 것에 고민하고 있었을까. 한국 국적이든 일본 국적이든 오차 범위가 아닌가. ' 콤플렉스를 극복했으니 다시 일본명을 내세워도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손'이라는 성으로 일본 국적을 취득하려 했더니 일본인 중 '손'이라는 성은 없다며 거절당했다. 생각 끝에 자신의 일본인 아내를 '손'씨로 개명시키고,"여기 있다" 하며 자신의 성을 '손'으로 등록한 건 유명한 일화다.
30년 전 23세였던 손정의 사장이 사원 두 명과 함께 설립한 소프트뱅크는 지금 사원 2만명에 연간 매출액 30조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손 사장의 사업 이념은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이다. 그는 창업 후 얼마 되지 않아 만성폐렴으로 쓰러져 입원한 적이 있다. 그때 '사람들에게 공헌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이라 절절히 느꼈다. 그 원점은 일찍이 자신을 귀여워해 주시던 할머니의 말씀이다. "다 남들 덕분이여.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남을 원망해서는 안되여.누군가가 도와 주었다구.남들 덕분이란 말이여."
2006년 3월 영업실적이 급속히 악화되던 보다폰재팬을 2조엔에 인수하며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모두들 의아해 했다. 그러나 '질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손 사장의 신념이고,보란 듯이 V자 회복을 달성시켰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하라 소이치로는 인프라를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때의 금 채굴용 양동이에 비유했다. 골드러시에서 꼭 필요했던 것이 금 채굴용 양동이었다. 양동이 장수는 모든 금 채굴자를 기쁘게 하면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현대판 양동이 장수가 손정의 사장이다. 그는 미국 야후의 제리양,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20세기폭스사의 루퍼드 머독 등 다른 세계적인 양동이 장수들과 파트너 관계다. 이들과 다른 것은 그가 눈물을 흘리는 최고경영자(CEO)라는 점이다.
2000년 초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해 소프트뱅크 주가가 100분의 1로 폭락했다. 성토장이 된 주주총회에서 손 사장은 앞으로도 네트워크 사업에 사운을 걸겠다고 호소했다. 주총 후반 어느 할머니의 발언이 손 사장의 가슴에 새겨졌다.
"나는 남편이 남긴 유산,퇴직금 모두를 소프트뱅크에 투자했다. 1000만엔이다. 당신의 꿈과 웅지를 믿었기 때문이다. 주가가 99% 하락해 1000만엔이 10만엔이 돼버렸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오늘 당신의 말을 직접 듣고, 당신의 꿈에 투자하길 잘했다고 마음 깊이 느끼니까. 나는 믿는다. 부디 열심히 해달라."
할머니의 이 말을 듣고 참석자 3분의 1 이상이 눈물을 훔쳤다. 비난투성이로 시작한 주주총회가 떠나갈 듯한 박수로 끝났다. '믿어준 사람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다'가 손 사장이 사업에 임하는 자세다.
그는 지난 3일 100억엔(1300억원)과 은퇴 때까지의 임원보수(2009년은 14억원) 전액을 일본 대지진 의연금으로 기부했다. 재해로 인한 고아들의 생활지원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고,그들에게 휴대폰을 무상 대여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통신요금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헌신이 재해로 인한 일본인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다. 손정의를 사랑하고 소프트뱅크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인간 내면에 파고든 인프라 구축의 성공이다. 그는 이렇게 사람을 위하면서 이기는 싸움을 한다. 좁은 일본을 감싸안은 큰손이기도 하다.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교수·재정학 >
그는 깨달았다. '나는 왜 그리도 작은 것에 고민하고 있었을까. 한국 국적이든 일본 국적이든 오차 범위가 아닌가. ' 콤플렉스를 극복했으니 다시 일본명을 내세워도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손'이라는 성으로 일본 국적을 취득하려 했더니 일본인 중 '손'이라는 성은 없다며 거절당했다. 생각 끝에 자신의 일본인 아내를 '손'씨로 개명시키고,"여기 있다" 하며 자신의 성을 '손'으로 등록한 건 유명한 일화다.
30년 전 23세였던 손정의 사장이 사원 두 명과 함께 설립한 소프트뱅크는 지금 사원 2만명에 연간 매출액 30조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손 사장의 사업 이념은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이다. 그는 창업 후 얼마 되지 않아 만성폐렴으로 쓰러져 입원한 적이 있다. 그때 '사람들에게 공헌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이라 절절히 느꼈다. 그 원점은 일찍이 자신을 귀여워해 주시던 할머니의 말씀이다. "다 남들 덕분이여.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남을 원망해서는 안되여.누군가가 도와 주었다구.남들 덕분이란 말이여."
2006년 3월 영업실적이 급속히 악화되던 보다폰재팬을 2조엔에 인수하며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모두들 의아해 했다. 그러나 '질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손 사장의 신념이고,보란 듯이 V자 회복을 달성시켰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하라 소이치로는 인프라를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때의 금 채굴용 양동이에 비유했다. 골드러시에서 꼭 필요했던 것이 금 채굴용 양동이었다. 양동이 장수는 모든 금 채굴자를 기쁘게 하면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현대판 양동이 장수가 손정의 사장이다. 그는 미국 야후의 제리양,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20세기폭스사의 루퍼드 머독 등 다른 세계적인 양동이 장수들과 파트너 관계다. 이들과 다른 것은 그가 눈물을 흘리는 최고경영자(CEO)라는 점이다.
2000년 초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해 소프트뱅크 주가가 100분의 1로 폭락했다. 성토장이 된 주주총회에서 손 사장은 앞으로도 네트워크 사업에 사운을 걸겠다고 호소했다. 주총 후반 어느 할머니의 발언이 손 사장의 가슴에 새겨졌다.
"나는 남편이 남긴 유산,퇴직금 모두를 소프트뱅크에 투자했다. 1000만엔이다. 당신의 꿈과 웅지를 믿었기 때문이다. 주가가 99% 하락해 1000만엔이 10만엔이 돼버렸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오늘 당신의 말을 직접 듣고, 당신의 꿈에 투자하길 잘했다고 마음 깊이 느끼니까. 나는 믿는다. 부디 열심히 해달라."
할머니의 이 말을 듣고 참석자 3분의 1 이상이 눈물을 훔쳤다. 비난투성이로 시작한 주주총회가 떠나갈 듯한 박수로 끝났다. '믿어준 사람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다'가 손 사장이 사업에 임하는 자세다.
그는 지난 3일 100억엔(1300억원)과 은퇴 때까지의 임원보수(2009년은 14억원) 전액을 일본 대지진 의연금으로 기부했다. 재해로 인한 고아들의 생활지원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고,그들에게 휴대폰을 무상 대여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통신요금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헌신이 재해로 인한 일본인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다. 손정의를 사랑하고 소프트뱅크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인간 내면에 파고든 인프라 구축의 성공이다. 그는 이렇게 사람을 위하면서 이기는 싸움을 한다. 좁은 일본을 감싸안은 큰손이기도 하다.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교수·재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