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피고 지면 봄은 어느덧 뒷자락만 남는다. 경남 하동 쌍계사 벚꽃은 옛날부터 유명하다지만 구례 화엄사에서 화개장터가 있는 화개를 지나서까지 섬진강 양쪽 꽃길 역시 장관이다.

서울에도 여의도 봄꽃축제 등 곳곳이 절경이지만 현충원의 벚꽃 역시 일품이다. 수양버들 모양의 벚꽃은 이곳 현충원이 나무 크기로 보나 꽃 모양새로 보나 최고인 듯하다.

현충원 근처에 사는지라 1년에 꼭 두 번 이상은 현충원에 들른다. 한 번은 꽃이 좋은 이맘때쯤이고 또 한 번은 현충일이다. 어떤 묘역에는 소복 차림의 할머니가 비석을 닦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요즘 제사를 가장 많이 지내는 곳은 월남 참전용사묘역이다. '소리쳐 불러봐도 대답이 없구나,목이 터져라 울어도 소용이 없구나…보고픈 내 아들아.' 어느 어머니의 절규도 보인다. 살아있다면 60대쯤이겠지.나와 동년배라 더 가슴이 뭉클하다. 월남전특수,피의 대가로 한국 경제 건설의 씨앗이 됐다. 그러나 찾는 가족도 세월과 함께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나와 집사람은 언제나 함께 독립유공자 묘역을 찾는다. 현충원 입구에서 준비해 간 꽃 몇 송이를 학생들이 꽂아 놓은 꽃에 보태고,꽃이 좀 더 오래 가게 화병에 물을 준다. 역사 교과서에서 익힌 그 이름들이다.

서재필 선생,전명운 선생,박영준 선생,이강훈 선생,이규창 의사….이회영 선생,양세봉 선생,안태국 선생,신송식 선생,그리고 장인환 선생….찾는 후손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민족,국가,가족,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되돌아 보게 된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그리고 짜싱에는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임시정부 요원들이 중국인의 도움으로 마련한 임시 피난처가 있다. 그곳들은 일반 가정집 수준으로 정부 청사로 보기에는 너무나 민망하고 초라했다. 임시정부 요원 및 그 가족 사진에 어려움과 비참함 그 자체가 묻어난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서대문형무소.현재는 역사관이 돼 있다. 그곳에 전시하고 있는 강우규 의사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제목은 '절명시'이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우리는 독립국가를 세웠다. 그것도 자유민주 국가를 세웠다. 그리고 현대산업국가가 됐다. 민주화도 이룩해 냈고 이제 선진국 문턱에 섰다. 현충원….향기 그윽한 백화가 만발한 곳에 순국선열들이 편히 잠들게 하자.그러면서 지금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자문해 본다.

정범식 < 호남석유화학 사장 bschong@lotteche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