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주길.."

12일 오후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내 자연과학동 한 강의실에서 열린 수리과학과 사제간 간담회에서는 학우들 간 친밀성을 더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이어졌다.

이날 수리과학과 학생 40여명과 20여명의 교수가 모인 간담회는 잇따라 숨진 학우와 교수 등 고인 5명에 대한 묵념과 학생과 교수간 소통방안에 대한 토론, 건의 및 질의응답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 학과 서동엽 교수는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KAIST에 소속감을 느끼면서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면서 "교수들이 열심히 지원하더라고 학생들 스스로 참여할 마음이 없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보다 과에 더 소속감과 애착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학부생들끼리 친하게 지내고 그룹스터디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자. 교수들도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이날 학과 행사에 참여하면 인센티브를 주고 학내 새터반(소그룹)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전공 과목 팀프로젝트를 만들어 스터디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같은 지도교수를 둔 학생들끼리 만남을 주선하고 학부 학생들의 티타임 참여를 독려하는 등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전공과목을 수준별로 편성해 학생들의 이해를 돕자는 의견도 나왔다.

한 학생은 "우리 학과는 특히 혼자하는 공부가 많다. 그래서 은둔형 외톨이가 많다는 외부의 시각도 있고.."라면서 "한 학기가 다 지날 때까지 지도교수가 누군지 모르기도 한다. 나도 어제 지도교수를 처음 봤다"고 말했다.

전면 영어강의 수업에 대한 비판과 엄격한 재수강 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학생은 "영어강의가 교수와 학생간의 소통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으며 한 교수도 "한국어로 강의할 때는 정서적인 상호작용(interaction)이 있었는데.."라며 아쉬워 하기도 했다.

KAIST는 고학번의 경우 중간고사를 보기 전에만 수강 취소가 가능하다.

학생들은 "중간고사 이후에도 수강 취소를 가능하도록 하고 차라리 돈을 받더라도 기말고사 직전에는 수강취소를 가능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외국에서 공부할 때의 경험을 비춰보면 그쪽에서도 학업량이 상당해 학생들이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심지어 중간고사에서 시험지를 배포하더라도 만지지만 않으면 수강 취소를 가능하도록 하는 학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해 놓고도 기말고사가 너무 어려워 뒤늦게 포기하는 학생도 있고 한 과목이 어렵다고 아예 휴학하는 학생도 봤다"면서 "자살하는 학생들이 생기니까 우려된다.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다른 교수는 "우리는 학생들이 국비로 학교를 다니는데 수강 취소는 좀 그렇지 않느냐"며 다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 같은 비극적인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난상토론을 벌였다.

몇몇 교수들은 자신의 수업을 듣는 제자가 왔는지 이리 저리 둘러보며 확인하는 모습이었고 학생들 사진과 이름이 적힌 명단을 뽑아 일일이 대조하는 교수도 눈에 띄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학생과 교수들은 축구동호회, 과별동아리 등을 만들고 MT를 개최하는 방안 등을 통해 교수와 학부생, 조교와 학부생간 소통을 활발히 하자고 입을 모았다.

학교 건물 앞 잔디밭에서도 전공이 결정되지 않은 1학년 자유전공학부 학생들 30여명이 지도교수와 만나 허심탄회한 분위기에서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여름방학 때의 계획을 발표하고 진로를 상담하는 등의 시간을 가졌다.

담당 교수는 "현재까지 발견된 문제들에 대해 교수들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달라"고 말했으며 이에 대해 한 학생은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KAIST는 전날부터 모든 과목을 휴강한 채 학과별로 교수-학생 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화가 마무리되는 대로 오는 14일 오후 7시부터 창의관 터만홀에서 서남표 총장과 학생들 사이의 2차 간담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