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100번 중 95번 실패해도 괜찮아"…HTC '성공 방정식'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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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 스마트폰 강자 HTC
삼성이 포기했던 구글폰 출시…포켓PC 등 '최초' 제품 많아
전략적 ODM으로 실력 키워…시총 338억弗…노키아 제쳐
삼성이 포기했던 구글폰 출시…포켓PC 등 '최초' 제품 많아
전략적 ODM으로 실력 키워…시총 338억弗…노키아 제쳐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기업의 세계는 더 그렇다. 최근에 이를 입증한 회사 중 하나가 대만의 스마트폰 메이커 HTC다. HTC는 최근 기업가치에서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인 핀란드 노키아를 넘어섰다. 지난 6일 대만 증시에서 338억달러의 시가총액을 기록,노키아 시가총액(336억달러)을 추월했다.
언론들은 '이변이 빚어졌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HTC의 노키아 추월은 '예고된 사건'이었다. 노키아는 시장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기엔 너무 크고 너무 성공한 기업이었다. 이에 반해 1997년 설립된 신생 HTC는 잃을 게 없었다. 그들에게 시장의 변화는 기회였다. HTC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실패 목표율 95%를 달성하라"
2009년 12월 삼성그룹 사내 언론매체 '미디어 삼성'에는 '1등 기업의 함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최초의 구글폰을 함께 개발하자는 구글의 제안을 삼성이 거절했다는 내용이었다. '재빠른 2등 전략'으로 성장해온 삼성전자는 '최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모방할 성공모델이 없는 사업에는 베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삼성은 안드로이드폰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포기했다. HTC는 그 기회를 잡았다. 2008년 HTC와 구글의 첫 합작품 G1의 탄생 배경이다. HTC는 안드로이드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글폰 개발 과정에서 삼성과 HTC가 보여준 차이점은 무엇일까? 실패에 대한 철학이다. HTC 개발팀에는 '실패목표율'이라는 지표가 있다. 개발한 제품 중 95%는 실패해야 한다고 아예 목표를 세워놨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5%의 성공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이 밑바탕이 됐다.
HTC는 이런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왔다. 최초의 손바닥 크기 컬러PC(1999),최초의 마이크로소프트(MS) 포켓PC(2000),최초의 MS 스마트폰(2005년) 등 수많은 '최초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문화 뒤에는 '매직 랩'이라 불리는 연구 · 개발(R&D) 조직이 있다. 여기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소프트웨어 마술사''기계 마법사'로 불린다. 회사는 매출의 25%를 R&D에 투자하고,연구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차세대 제품 개발에 전념한다. 개발 과정의 중심에는 늘 고객이 있다.
고객 친화적 제품,고객 친화적 사용자환경(UI)을 개발하는 것이 매직 랩의 궁극적 목표다. 전화기를 가방에 넣어두면 벨소리가 커지고,꺼내면 줄어드는 기능 등이 대표적인 고객 친화형 UI다.
◆파트너십을 활용한 시장 개척
냉엄한 기업의 세계에서도 '인맥'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큰 변수로 작용할 때가 많다. HTC에도 인맥,즉 파트너십은 핵심 성공 요인이었다. HTC 창업자인 처 왕 회장과 피터 초우 CEO는 HTC가 ODM(제조업자개발생산) 업체였던 2000년대 초반부터 휴대폰업계의 숨은 실력자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그 중 한명이 안드로이드 개발자이자 현 구글 부사장인 앤디 루빈이다.
무명이던 루빈이 2003년 안드로이드라는 회사를 만들었는 때 HTC는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다. 안드로이드는 2005년 구글에 인수됐고,세계적인 개방형 운영시스템(OS) 안드로이드가 탄생했다. HTC가 첫 구글폰의 개발사로 선정될 수 있었던 건 앤디 루빈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 덕분이었다.
HTC는 창업 초기부터 MS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대만 최대 민영기업 포모사의 창업주 왕융칭의 딸이자 UC버클리 출신인 처 왕 회장은 빌 게이츠,스티브 발머 등과 돈독한 친구 사이였다.
HTC는 이 밖에도 퀄컴 등 기술 제공업체부터 오렌지,모바일 등 통신회사까지 전방위적인 파트너십을 맺으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노키아나 애플이 자체 플랫폼을 고집하는 것과 달리 HTC는 각국의 통신서비스 회사들이 제안하는 음악,비디오게임 다운로드 서비스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생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을 개척해 왔다"고 말했다.
◆전략적 ODM 효과 '톡톡'
HTC의 노키아 추월을 이변이라 부를 이유는 많다. 불과 5년 전까지 HTC는 대만의 다른 IT기업들처럼 남의 회사 제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이름 없는 ODM 업체였다. 1980년대부터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아온 노키아와는 태생부터 달랐다.
그러나 HTC는 돈만 되면 어떤 제품이건 생산해주는 다른 대만 ODM 업체들과 달랐다. 피처폰(스마트폰보다 연산 능력이 떨어지는 일반 휴대폰)은 애초부터 HTC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피터 초우 CEO는 지난해 한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언제 어디서든 손끝으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바일 컨버전스에 관심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준비된 자에겐 기회가 오게 마련이다. 그들의 예상대로 스마트폰 시장은 2006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HTC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2007년 6월 처음으로 자사의 브랜드를 내건 'HTC 터치'라는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그리고 2008년 세계 최초의 구글폰 G1을 출시하면서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넥서스원''디자이어'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으며 '대만의 삼성전자'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시장 변화에 대한 통찰력과 조용하지만 철저한 준비,때가 됐을 때 과감하게 실행으로 옮긴 결단력이 오늘의 HTC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겸손한 뛰어남(quietly brilliant)'이라는 HTC의 브랜드 슬로건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실력과 파트너십을 발판으로 성장해온 HTC의 성공 DNA를 그대로 담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언론들은 '이변이 빚어졌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HTC의 노키아 추월은 '예고된 사건'이었다. 노키아는 시장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기엔 너무 크고 너무 성공한 기업이었다. 이에 반해 1997년 설립된 신생 HTC는 잃을 게 없었다. 그들에게 시장의 변화는 기회였다. HTC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실패 목표율 95%를 달성하라"
2009년 12월 삼성그룹 사내 언론매체 '미디어 삼성'에는 '1등 기업의 함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최초의 구글폰을 함께 개발하자는 구글의 제안을 삼성이 거절했다는 내용이었다. '재빠른 2등 전략'으로 성장해온 삼성전자는 '최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모방할 성공모델이 없는 사업에는 베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삼성은 안드로이드폰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포기했다. HTC는 그 기회를 잡았다. 2008년 HTC와 구글의 첫 합작품 G1의 탄생 배경이다. HTC는 안드로이드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글폰 개발 과정에서 삼성과 HTC가 보여준 차이점은 무엇일까? 실패에 대한 철학이다. HTC 개발팀에는 '실패목표율'이라는 지표가 있다. 개발한 제품 중 95%는 실패해야 한다고 아예 목표를 세워놨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5%의 성공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이 밑바탕이 됐다.
HTC는 이런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왔다. 최초의 손바닥 크기 컬러PC(1999),최초의 마이크로소프트(MS) 포켓PC(2000),최초의 MS 스마트폰(2005년) 등 수많은 '최초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문화 뒤에는 '매직 랩'이라 불리는 연구 · 개발(R&D) 조직이 있다. 여기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소프트웨어 마술사''기계 마법사'로 불린다. 회사는 매출의 25%를 R&D에 투자하고,연구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차세대 제품 개발에 전념한다. 개발 과정의 중심에는 늘 고객이 있다.
고객 친화적 제품,고객 친화적 사용자환경(UI)을 개발하는 것이 매직 랩의 궁극적 목표다. 전화기를 가방에 넣어두면 벨소리가 커지고,꺼내면 줄어드는 기능 등이 대표적인 고객 친화형 UI다.
◆파트너십을 활용한 시장 개척
냉엄한 기업의 세계에서도 '인맥'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큰 변수로 작용할 때가 많다. HTC에도 인맥,즉 파트너십은 핵심 성공 요인이었다. HTC 창업자인 처 왕 회장과 피터 초우 CEO는 HTC가 ODM(제조업자개발생산) 업체였던 2000년대 초반부터 휴대폰업계의 숨은 실력자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그 중 한명이 안드로이드 개발자이자 현 구글 부사장인 앤디 루빈이다.
무명이던 루빈이 2003년 안드로이드라는 회사를 만들었는 때 HTC는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다. 안드로이드는 2005년 구글에 인수됐고,세계적인 개방형 운영시스템(OS) 안드로이드가 탄생했다. HTC가 첫 구글폰의 개발사로 선정될 수 있었던 건 앤디 루빈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 덕분이었다.
HTC는 창업 초기부터 MS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대만 최대 민영기업 포모사의 창업주 왕융칭의 딸이자 UC버클리 출신인 처 왕 회장은 빌 게이츠,스티브 발머 등과 돈독한 친구 사이였다.
HTC는 이 밖에도 퀄컴 등 기술 제공업체부터 오렌지,모바일 등 통신회사까지 전방위적인 파트너십을 맺으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노키아나 애플이 자체 플랫폼을 고집하는 것과 달리 HTC는 각국의 통신서비스 회사들이 제안하는 음악,비디오게임 다운로드 서비스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생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을 개척해 왔다"고 말했다.
◆전략적 ODM 효과 '톡톡'
HTC의 노키아 추월을 이변이라 부를 이유는 많다. 불과 5년 전까지 HTC는 대만의 다른 IT기업들처럼 남의 회사 제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이름 없는 ODM 업체였다. 1980년대부터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아온 노키아와는 태생부터 달랐다.
그러나 HTC는 돈만 되면 어떤 제품이건 생산해주는 다른 대만 ODM 업체들과 달랐다. 피처폰(스마트폰보다 연산 능력이 떨어지는 일반 휴대폰)은 애초부터 HTC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피터 초우 CEO는 지난해 한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언제 어디서든 손끝으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바일 컨버전스에 관심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준비된 자에겐 기회가 오게 마련이다. 그들의 예상대로 스마트폰 시장은 2006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HTC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2007년 6월 처음으로 자사의 브랜드를 내건 'HTC 터치'라는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그리고 2008년 세계 최초의 구글폰 G1을 출시하면서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넥서스원''디자이어'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으며 '대만의 삼성전자'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시장 변화에 대한 통찰력과 조용하지만 철저한 준비,때가 됐을 때 과감하게 실행으로 옮긴 결단력이 오늘의 HTC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겸손한 뛰어남(quietly brilliant)'이라는 HTC의 브랜드 슬로건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실력과 파트너십을 발판으로 성장해온 HTC의 성공 DNA를 그대로 담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