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큰일났습니다. 대법원 사건은 전혀 못 맡겠습니다. 허허…." 지난 1일 저녁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설렁탕집.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신영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게 농담을 건넸다. 국회에서 열린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공청회를 마치고 '법조 3륜' 수뇌부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였다. 신 회장 맞은편에는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앉아 있었다.

공청회에서 신 회장이 "현재의 대법관 수(14명)로는 신뢰할 수 있는 상고 심리가 어렵다"며 대법관 숫자를 40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제안한 데 대한 언급이었다. 신 회장안(案)은 사개특위 6인 소위의 20명안보다 두 배나 많은 수치다.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대한변협 사무실에서 만난 신 회장은 이런 뒷얘기를 들려주며 "앞으로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사심 없이 해서 국민들을 시원하게 해드리겠다"며 "눈치 보고 겁낼 게 뭐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대한변협이 민감한 이슈마다 전면에 나서는 것도 그의 이런 적극적인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준법지원인 제도는 실익도 없고 기업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데 꼭 도입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2001년 말 거대 에너지기업인 엔론사가 회계부정으로 도산하면서 미국이 발칵 뒤집혔어요. 미국 회사의 회계감사마저 믿지 못할 상황이 된 거죠.그래서 다음해 7월 사베인스 옥슬리법이 제정됐어요. 경영진이 기업 회계장부의 정확성을 보증하고 잘못이 있으면 처벌을 받도록 하는 강력한 제재규정을 담았습니다. 그만큼 기업 경영진에 대한 견제는 중요합니다. 법적으로 경영진을 감시하는 장치가 준법지원인입니다. 그런데 사외이사나 감사,고문변호사,사내변호사는 권한에 제약이 있어서 철저히 감시를 못해요. 한국도 세계 경제 10위권에 달하는 대국이 됐으니 준법경영을 강화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

▼대한변협이 변호사들의 생계를 위해 발벗고 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법조인 수급정책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 사회가 역동적인 건 참 좋습니다. 그런데 무책임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의 로스쿨법안과 한나라당의 사학법이 맞교환된 것 아닙니까. 로스쿨 학생을 몇 명 뽑고,어떻게 교육시키고,연수는 어떻게 할지 전혀 논의도 없이 법조인 임용계획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로스쿨에서 난리가 날지 모르겠지만,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처럼 일정 점수를 넘어야 합격시켜 주는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실력이 있으면 다 합격하고,아니면 50%만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도 있겠죠.사전에 합격률을 높게 선정해 거의 다 합격이 보장된다면 공부를 열심히 안할 겁니다. "

▼최근 판 · 검사,변호사들의 비리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 사회 전반이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있어요. 세대가 바뀌면서 가치 기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변호사도 많이 뽑아 놓으니까 경쟁이 정말 치열해졌어요. 법대로,FM(야전교범 · 규정)대로 사는 사람이 바보 취급 받아서는 곤란합니다. 법조인들이 우리 사회의 중심을 바로 잡아줘야 하는데….부끄러운 일입니다. 법조인이 법을 위반할 때는 엄격하게 처벌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

▼그러자면 사법개혁이 제대로 돼야 할 것 같은데요.

"국회 사개특위의 6인소위안 가운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안에는 원칙적으로 반대합니다. 다만 중수부의 병폐였던 과잉수사와 별건수사는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은 혐의가 없는데도 뭐든지 하나라도 잡아내는 식의 수사가 진행돼왔잖아요. 특별수사청 설치에는 찬성하지만,대검 산하에 두는 것은 반대입니다. 대법관 증원은 대부분 변호사들이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대법관 1명이 1년에 3000건이나 되는 기록을 볼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재판입니까. 잘못하면 원님재판이 될 수 있어요. 3심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겁니다. "

▼인천 송도에 국제중재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죠.

"얼마 전 현대오일뱅크 사건을 보면 사건에 적용할 준거법은 우리나라 법인데 계약 당사자들이 싱가포르를 중재지로 정했어요. 그러다 보니 중재인들이 전부 외국 변호사들이고 우리 법조인은 끼지 못했습니다. 중재인들이 한국 법을 모르니까 국내 변호사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중재를 했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아쉬움이 많았죠.한국 기업들이 사업을 활발히 펼치면서 한국 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중재사건이 많이 늘었습니다. 인천시에서 송도에 큰 건물을 하나 세우는데 거기에 국제기구가 들어와도 좋다고 해요. 가까운 시일 내에 양해각서(MOU)가 체결될 예정이고,늦어도 내년까지는 중재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서 박사학위까지 땄는데,한국 로스쿨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학생들이 성적을 관리하느라 어려운 과목 대신 학점 따기 쉬운 과목만 골라서 들어요. 거기다 법무부 장관은 성적 좋은 사람을 검사로 임용하겠다고까지 했으니 말 다했죠.실무교육도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해놨습니다. 정말 성공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어요. 영미법은 판례법 중심입니다. 로스쿨에서 3년만 공부해 법 찾는 요령만 알면 일하는 데 문제가 없어요. 로펌에서 시험에 합격한 변호사들을 연봉 15만~16만달러에 바로 데려다 씁니다. 우리나라는 대륙법 계통이어서 판례뿐만 아니라 이론도 알아야 합니다. 3년 안에 기본법 공부하기도 힘들죠.시장에 이런 변호사를 내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한-유럽연합(EU )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늦어지고 있지만 빗장이 풀리기만 하면 국내 법률시장에 파급효과가 상당하겠죠.

"지난 3월에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7월께부터 법률시장이 단계적으로 개방될 것으로 봤는데,오역 등 문제로 좀 늦어질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영국 등 유럽계 로펌이 들어오면 한국 기업 사건을 대리하려고 마케팅 활동에 역점을 두겠죠.한국의 중 · 대형 로펌과 경쟁이 치열해질 겁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좀 더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국내 로펌들 입장에서는 정신차리지 않으면 다 뺏기는 상황이 될지도 모릅니다.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3단계 개방이 되면 중소형 로펌들은 외국 로펌들과 파트너십이나 합병,동업이 가능합니다. 외국 변호사들이 국내 시장에 와서 탈법행위를 하거나 윤리규정을 어기는지 잘 모니터링하고 적절히 징계조치도 할 겁니다. "

▼판사생활 2년 하고 곧장 미국으로 가셨죠.대학 동창이나 당시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상당히 다른 길을 걸었는데요.

"제가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판사생활 하면 빤한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단독판사하고 부장판사하고….공부도 더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서둘러 유학을 가게 됐어요. 공부하다 보니까 정말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판결문을 읽으면 기가 막혀요.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승복이 되고 설득력이 있고.상당히 감동받았어요. 우리 증권법은 미국 연방증권법을 일본을 거쳐서 들여온 겁니다. 증권법으로 박사학위를 땄는데 세 나라 법을 비교해 보니 잘못 받아들인 것도 많고 해서 한국에 들어오면 기여할 것이 있겠다 싶었죠."

신영무 변협 회장은 美변호사회 첫 한국인…유학 후 로펌 '세종'설립

신영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67)은 국내 5대 로펌인 세종의 창립자다. 최고경영자(CEO) 역량이 검증됐다는 얘기다. 법조계에서는 신 회장을 "의욕적이고 추진력이 있는 인사"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독불장군형은 아니다. 매사에 주변의 의견을 들어본 뒤 합리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삼국지의 '유비형'에 가깝다.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68년 사법시험(9회)에 합격했다. 육군법무관을 거쳐 1973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법조인의 삶을 시작한 그는 그러나 2년 만에 법복을 벗고 미국 국무부 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증권법 전공으로 1978년 법학박사 학위(JSD)도 취득했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 뉴욕주 변호사회에 가입했는데 한국 변호사로는 1호다. 매주 청계산을 등산하거나 골프(핸디 12)를 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김병일/이고운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