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보다 재테크 잘한다] 아내 말 듣고 삼성동 미분양 산 金교수…10년만에 21억 벌어
서울 잠실에서 비교적 넉넉하게 사는 김씨(56).그는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실물 동향에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는 모든 자산관리를 아내에게 맡긴다. 처음부터 아내를 찾았던 것은 아니다. 신혼 초에 그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공과 관계된 주식에 투자해 종잣돈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론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월급봉투를 주식 시장에 가져갈 때마다 번번이 깨졌다. 경제학 박사학위가 아깝다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살림만 하던 아내가 보다 못해 김씨의 월급통장 관리에 나섰다. 재테크라고는 전혀 몰랐던 아내지만 7년 만에 내집 마련에 성공했다. 아내의 자산관리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동네에서 부자로 소문난 이들을 재테크 스승으로 삼아 저축하는 방법부터 투자하는 방법까지 고스란히 따라했을 뿐이다. 종잣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파트 분양시장에 관심을 기울였고 모르는 것은 중개업소를 찾거나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며 배웠다.

2000년 아내는 미분양난 삼성동 아이파크 189㎡를 7억2000여만원에 매입하자고 했다. 김씨는 반대했지만 아내의 설득에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보기에 이 아파트는 교육환경이 좋고 병원과 백화점 등이 가까운 데다 교통환경도 좋아 투자 가치가 있었다. 지난달 기준 이 아파트의 매매 시세는 28억7000만원가량에 이른다. 이후에도 김씨 부부는 아내의 주도로 건대입구역 인근에 상가를 매입하는 등 재테크에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반면 서울 무교동에서 대중음식점을 하는 한씨(52)는 2001년 아내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차 110㎡를 2억5000만원에 사자고 했던 것을 물리쳤다가 두고 두고 후회하고 있다. 그는 "요즘 같은 경제 상황에서 부동산 투자가 말이 되느냐"며 내치고 '한 방'을 노리며 주식 투자에 올인했다 투자액의 80%를 까먹었다. 그는 앞으로 자산관리는 전부 아내에게 넘기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이 최근 발간한 '강남 부자들'이라는 책에 소개된 사례다.

◆한 방 노리는 '가난한 아빠'들

중년 부부들 사이에서 아내에게 투자 결정권을 맡겨서 기울던 가세를 되돌렸다거나 아내 말을 안 듣고 투자하다 실패했다는 얘기는 흔하디 흔하다. 중년 남성들 중에는 특히 한씨처럼 부동산보다 주식을 선호하다 실패한 경우가 많다. 부동산의 상승 흐름에 비해 주식은 종목별로 차이가 크고 변동이 심했던 탓이다.

한씨와 같은 투자 성향을 가진 '가난한 아빠'들이 김씨 아내와 같은 '부자 엄마'들을 당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방'을 노리느냐 아니냐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꼼꼼히 투자 대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투자 결과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직접 발로 뛰는 재테크를 하느냐 여부도 다르다. 부자 엄마들은 부동산 투자를 하기 전 반드시 여러 차례 현장을 찾는다. 주식 투자를 하기 전에도 해당 기업의 상품이 어떤 평을 듣고 있는지 체크한다. 반대로 가난한 아빠들은 남의 말에 혹해 도로도 없는 맹지를 사거나 작전주에 걸리는 일이 다반사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가난한 아빠들은 대체로 투자 편식 습성이 있고 아내의 진심 어린 조언에 핀잔으로 일관하며 일확천금을 노린다"며 "부부가 함께 꾸준한 자산관리를 실천해야 부자 엄마,부자 아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외에도 관심 가져야

우리나라 여성들의 재테크에도 '함정'은 있다. 그간 선호도가 높았던 부동산 대세 상승이 앞으로도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반면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투자 부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재테크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스터카드가 작년 9~11월 한 · 중 · 일 등 14개국 3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금융지식을 측정한 결과 한국 여성의 금융지식 지수는 55.9로 14개국 여성들 중 최하위였다. 특히 재테크 기본지식과 자산관리 부문에서 꼴찌였다. 제일 점수가 좋은 것은 태국 여성(73.9)이었다. 여성의 비즈니스 경험이 많기 때문이라고 마스터카드는 분석했다. 한국 남녀의 금융지식 지수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한 금융계 전문가는 "요즘 젊은 주부들은 과거에 비해 금융지식이 훨씬 우수한 편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어머니 세대처럼 무조건 부동산에 투자하겠다거나 남성처럼 한 방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며 "재테크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되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보면 성과가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