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카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반가량 떨어진 중부지역의 항구도시다. 우리에게 익숙한 멜라카 해협에 자리잡고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중국 한국 일본으로 왕래하는 화물의 대부분이 지나는 해상 요충지이기도 하다.

멜라카는 원래 이 지방의 나무 이름이다. 14세기 인근 수마트라 왕국에서 이 지방으로 건너온 왕자가 싸움에 지쳐 기진했을 때 이 나무 열매를 먹고 원기를 회복해 나라를 건설했는데 그 나라 이름이 멜라카 왕국이다.

15세기 초 포르투갈의 한 선박과의 전쟁에 패해 식민의 역사가 시작된 이곳은 16세기에는 네덜란드,17세기부터는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세기에 세워진 목재로 된 교회가 아직 건재하다. 개미 이빨이 들어가지 않는 단단한 나무라서란다. 이 교회에서 주일 예배는 현지어는 물론 영어,중국어,인도계인 타밀어 설교도 있다. 불교,도교사원,힌두사원도 한 도시 내에 공존하고 있다.

도심엔 네덜란드 마을도 있다. 그 옛날 눈이 많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급경사 지붕 형이다. 영국식 건물은 이중구조의 지붕으로 주로 열대지방에 적합한 자연 환기장치를 갖추고 있다. 유럽의 소도시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동서양이,중국,인도,말레이의 다민족 다문화가 공존한다. 현지 말레이인과 중국인이 결혼해 태어난 남자는 '바바'이고 여자는 '나요냥'이라 부른단다.

글로벌화에서도 단연 선진 지역이다. 영국 통치 시절 주석광산과 대규모 고무 농장 등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중국 광둥지방 그리고 인도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현재 인구는 말레이인(65%),중국인(26%),인도계(7%)로 구성됐다.

비슷한 여건의 아세안 지역에서는 가장 발전된 나라다. 역시 리더십의 차이로 보인다. 1957년 영국에서 독립했다. 초대 총리는 라만(1957~1969)이다. 마하티르(1981~2003) 등이 총리를 지냈고 현재는 라자크 총리다. 멜라카 정부는 지난 아시아 금융위기를 금융 규제 강화와 아시아 가치를 내세우며 독자 정책으로 극복해 냈다.

얼마 전 쿠알라룸푸르에서 조호르바루까지 고속도로 370㎞를 여행했다. 일부 구간은 왕복 6차선,일부는 4차선 고속도로다. 도중에 멜라카에도 들렀다. 휴게소는 깨끗하고,사람도 차도 많다. 우리 수준과 다를 바 없다. 고속도로 주변은 열대림의 연속이고 간혹 야자수와 팜 나무도 보인다. 조호르바루에 가까워지니 팜 농장이 많이 보인다. 천혜의 자원이다.

이래저래 자주 말레이시아에 들르게 된다. 처음에는 더운 열대지방의 어려운 나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가볼수록 좋은 곳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은 순박하다. 천혜의 자원인 열대림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동서양의 다민족 다문화가 있는 나라이자 금융위기를 독자정책으로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이 가는 나라다.

정범식 < 호남석유화학 대표 bschong@lotteche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