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책사업 수행을 위해 발주하는 각종 연구용역에 대한 신뢰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투자개방형(영리) 의료법인 도입을 놓고 2009년 공동 연구용역을 실시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보건산업진흥원이 상반된 결과를 발표한 게 단적인 예다.

정부가 의료산업 선진화 정책을 처음 꺼내든 것은 2008년 4월.병원의 설립 주체를 영리법인으로 넓혀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하고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기획재정부는 그해 5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허용 방안을 내놓으면서 영리 의료법인 설립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은 보건복지부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됐다. 당시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며 도입을 막았다.

이렇게 되자 재정부와 복지부는 공동으로 연구 조사를 실시키로 합의했다. 2009년 5월 KDI와 보건산업진흥원에 관련 용역을 맡겼다.

막상 나온 발표문에는 두 부처를 대변하는 두 연구기관의 서로 다른 주장만 쭉 나열됐다.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한 KDI는 재정부를,진흥원은 복지부 견해를 각각 지지했다. KDI는 투자 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에 따른 효과가 크다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진흥원은 부작용이 우려스럽다는 데 주안점을 뒀다.

예컨대 KDI는 "영리법인을 도입하면 진료비가 감소할 것"이라며 "의료 서비스 가격 1% 하락 시 국민 의료비는 2560억원 줄어들게 된다"고 예측했다. 반면 진흥원은 "개인 병원 중 2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경우 국민 의료비는 7000억~2조2000억원 증가하고 66~92개의 중소병원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두 부처는 발표 당일 용역 결과에 대한 합동 브리핑을 전날 저녁 갑자기 취소하는 촌극을 빚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