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0조엔(135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 지진 복구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소득세와 상속세 등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법인세를 내리려던 방침은 철회할 움직임이다. 3 · 11 대지진이 일본의 세제정책을 감세에서 증세로 유턴시키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 복구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소득세 세수 규모를 3~5년간 한시적으로 10%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자녀수당과 고속도로 무료화 등의 주요 선심성 정책을 축소하더라도 재해 복구를 위한 재원을 충당하기 어렵다고 보고,한시 조치로 소득세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소득구간별로 소득세율을 얼마만큼 인상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2010년도(2010년 4월~2011년 3월) 일본의 소득세 세수는 12조8000억엔이었다. 때문에 소득세 세수 규모를 10% 늘릴 경우 1조엔 이상의 새로운 재원 확보가 가능하다.

상속세율 인상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현재 1인당 상속금액이 3억엔(40억원)을 초과할 때 50%의 최고 세율을 적용한다. 이 최고 세율을 55%로 5%포인트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모타니 고스케 일본정책투자은행 지역기획부 부장은 "상속세 인상은 원래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검토됐다"며 "그러나 재해 복구를 위해 법인세 인하 방침을 철회하더라도 상속세는 예정대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수입 맥주에 대한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에선 맥아 비율이 66.7% 이상인 원조 '맥주'에는 350㎖ 캔맥주를 기준으로 주세(酒稅) 77엔을 부과한다. 맥아 비율이 25% 미만인 '발포주'에는 47엔,맥아를 아예 넣지 않았거나 발포주에 소주 등을 섞은 '수입 맥주'에는 28엔을 매긴다. 그러나 일본 내 장기 불황에 따라 원조 맥주와 발포주의 판매량이 줄고,수입 맥주의 점유율이 크게 늘면서 주세 수입도 덩달아 감소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일본 내 맥주 점유율 중 수입 맥주 비중이 35%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라며 "수입 맥주 주세를 올려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 정부가 방침을 확정했던 법인세 인하 계획은 무산될 전망이다. 간 나오토 내각은 현행 실효세율 40%인 법인세를 5%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재해 복구 재원 마련을 위해 이 같은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동안 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법인세 인하를 강력히 주장해온 일본 재계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도 정부의 법인세 인하 철회를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한편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의 일본 정부 예산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요코미치 다카히로 일본 중의원(하원) 의장은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헌법 규정에 따라 2011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킨 중의원 의결이 참의원(상원) 결정에 우선한다고 선언해 예산을 최종 통과시켰다. 앞서 여당이 다수인 중의원은 지난 1일 92조4116억엔 규모의 일반회계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야당이 다수인 참의원은 29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부결시켰다. 일본에선 예산과 관련해 상 · 하원의 결정이 다를 경우 양원 대표가 협의해야 하고,그래도 안 되면 중의원 의장의 권한으로 예산을 성립시킨다.

일본 정부는 곧바로 재해 복구를 위한 2조엔 규모의 1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이어 순차적으로 2,3차 추경예산을 편성해 10조엔이 넘는 재해 복구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장성호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