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4.5%를 넘는 등 물가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월 수준을 넘어 5%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체감 인플레(물가상승)는 더욱 심각하다. 이마트가 78개 주요 상품가격을 조사해집계하는 이마트 생활가격지수 2월치는 전년 동월 대비 9.4% 올랐다. 정부 통계치의 2배를 넘는다.

이 같은 물가 대란에도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신문은 29일 월례 토론회에서 '물가,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다양한 방안들을 논의했다.


◆현실이 지표보다 더 심각

토론 참석자들은 정부의 물가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해 대응이 늦어지는 게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시장에 나가보면 주먹만한 감자 하나가 1700원 하고,기름도 ℓ당 2000원이 넘는 주유소가 절반을 넘었다"며 "한국은행에서는 물가 상승률이 4%대라고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만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전셋값이 작년에 비해 수천만원씩 뛰었는데 정부의 물가 지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규 한국은행 물가통계팀장은 "소비자 물가지수는 489개 품목을 조사해 만들어진다"며 "가중치가 서로 다른데다 5년에 한 번씩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체감 물가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령이나 소득에 따른 새로운 지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플레 기대심리 진정 시급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인플레 기대심리부터 꺾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커지면 수급 문제와는 무관하게 임금 인상 압력이 높아져 물가가 계속 올라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통화량 증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수요가 늘고 공급이 줄면서 인플레 기대심리도 확산되는 추세"라며 "그렇다고 해서 원가공개 요구나 인위적인 공공요금 억제와 같은 시장왜곡 정책은 부작용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한국의 잠재 경제성장률이 4.5% 정도인 점을 감안할 때 2% 정도의 물가 상승률을 더한 명목금리는 6% 정도가 적당하다"며 "4%대에 머물고 있는 현 금리 수준은 비정상적으로 낮다"고 강조했다.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올리려면 고용을 줄여야 하는 선택의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며 "유가 상승도 단순히 외부 변수가 아니라 수출 증가 때문이라고 한다면 결국 총수요 문제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환율 하락 용인 가능성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정책 당국이 금리는 계속 올리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고 있지만 환율에 대해서는 별다른 스탠스가 없는 것 같다"며 "고환율 정책은 수출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정상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세상인이나 농민 등 생산자 보호와 소비자 권익 보호에 대한 이해관계 상충 문제도 있는 만큼 정책 당국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영빈 변호사는 "쌀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것은 결국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며 "소비자와 생산자 간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하는 만큼 정부가 이에 대한 정책을 제대로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