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개 중 70여개가 만성적자…수요예측 잘못·선심정책 합작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는 쪽으로 가닥잡은 것은 적자 투성이로 전락한 일본 공항의 구조조정 사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는 97개의 공항이 각지에 산재해 있으며 이 중 70여개가 만성적인 적자 상태다. 부실한 수요예측과 지역 주민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이 빚은 결과다.
일본 정치권은 1990년대 초 지역 개발을 명분으로 연간 5000억엔(6조8000억원) 규모의 '공항정비 특별회계'를 만든 뒤 신규 공항 건설을 주도했다. 마구잡이식 공항 건설로 일본 관서지역 관문인 오사카 · 고베 일원에만 간사이,오사카,야오,고베 공항 등 4개 공항이 반경 25㎞에 밀집해 있다.
이 가운데 1994년 오사카만을 매립해 건설한 간사이국제공항은 일본 항공정책의 최대 실패사례로 꼽힌다. 당시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됐지만 도쿄 외곽의 나리타공항과 더불어 양대 허브로 기대됐던 간사이국제공항은 지난해 말 총부채가 17조7222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다. 연간 이자비용만 2726억원에 이른다.
도쿄 권역과 오사카 권역의 항공 수요가 분산됐기 때문이다. 오사카국제공항의 과밀화와 소음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항공 수요를 제대로 감안하지 않고 기존 공항 바로 인근에 국제공항 건설이 강행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간사이국제공항의 경영이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은 2006년 인근 지역에 고베신공항이 개장하면서부터다. 탑승객과 정기 항공편이 대거 분산돼 영업수지는 더 악화됐다. 게다가 화물편도 인근 공항으로 빠져나가 인천공항에 허브 공항의 지위를 넘겨주게 됐다.
공항 건설을 남발한 일본은 뒤늦게 수습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최근 간사이 · 오사카공항의 통합을 추진 중이다. 일본에서 대형 국제공항의 경영통합이 추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교통성은 두 공항의 경영통합을 위해 정부가 100% 출자하는 신설 통합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통합회사는 두 공항의 인력 절감과 중복 노선 폐지 등을 통해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설 방침이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