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 호리병 속 일본인의 슬픈 현실
3 · 11 대지진과 쓰나미,그로 인한 최악의 원전 사고로 일본이 긴장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재해에 맞선 일본인들의 침착한 질서의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매뉴얼 사회의 진면목과 습성도 톡톡히 보여주었다.

이번 재해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물자가 남아도는 초과공급 사회다. 국내와 해외에서 보내 온 의연금이나 구호물품도 엄청나다. 그러면서도 처음 당하는 것이라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배분할지 몰라 한참동안 현청(縣廳) 창고에 쌓아 놓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한심하기도 하다.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줄을 섰는데 제대로 활용을 못해 사람 손이 부족하다고 한다. 한국적 감각으로 말하면 눈썰미가 정말 없다. 지침이나 정해진 규칙이 있어야만 움직여 온 사회의 맹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는 총리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가며 앞장서려니 했다. 총리 자신이 조금은 방사선을 맞더라도 현장을 다니면서 위로할 줄 알았다. 재해 발생 열흘이 지나서야 현장에 간다고 하더니 그것도 날씨가 안좋다고 취소했다. 국가적 재난이라 판단했다면,지체 없이 원자력안전보안원장,자치단체장,관계장관,방사선 전문가,도쿄전력 사장 등을 모아 대책본부를 차리고 교통정리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간 나오토 총리 입에서 나온 소리는 도쿄전력 사장을 앞에 두고 "당신들밖에 없으니까 각오를 하라"는 정도였다. 우리 감각으로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대처 방법들이 수두룩하다. 사령탑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는 '일본식' 대처 방법의 문제점이다.

이번 재난은 많은 국가와 외교를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절호의 기회임에도 일본의 강한 내부 지향성으로 외부 도움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어설픔을 보인다. 안(일본 내)과 밖을 구분한 다음 우선 안을 다지는 규정을 만든다. 밖과의 관계는 그 규정 하에서 일부 주변적인 것에 한정한다.

일본의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사상'에서 일본인의 습성을 '문어잡이 호리병(다코쓰보)'에 비유했다. 좁은 구멍으로 들어가 그 속의 닫힌 공간에 숨으려는 문어의 습성을 이용하는 것이 '다코쓰보'다. 요오드131이나 세슘137 등의 방사선 물질이 시금치 우유 수돗물 등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입에 거품 물고 항의하는 사람도 없다. 속으로 삭이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이 호리병 속의 착한 사람들로 하여금 바깥 세상과 어우러지도록 유도해야 할 텐데 그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이들의 한계다. 4기째 도쿄도지사에 출마하는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그런 성향을 이용하는 교묘한 쇼도 많이 한다. 도쿄도 소방관들이 후쿠시마 원전에 물을 뿌리고 돌아온 지난 21일 이들을 모아 놓고 "당신들이 일본을 구했다"고 눈물을 보이며 인사했다. 일본 밖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능란하게 인기를 올리는 정치가의 표상이다.

호리병 안에 머물며 밖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한 일본은 자꾸 기울어지는 인상을 줄 것이다. 그래도 일본인은 자신이 들어갈 곳이 있으면 안심이다. 무서운 것은 이들의 학습효과다. 이번 재난이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대처 매뉴얼이 없었다. 앞으로는 이번과 같은 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는 더 이상 초유의 사태가 아니다. 이들은 이번 재난을 학습해 매뉴얼을 만들고,자신들의 텃밭처럼 훤하게 익혀갈 것이다. 텃밭을 안전하게 손질해 놓고 안심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이들이 추구하는 복구의 모습이다. 그런 복구가 이뤄진 다음 지금과 같은 재난이 다시 왔을 때 질서정연한 그들의 대처 능력을 보는 외부인들은 그저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교수·재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