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벗 삼아 화필로 뽑은 땅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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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씨 29일부터 회고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은 처음입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추상화가 대세를 이루던 서울 화단을 떠나 설악산에 들어간 지 벌써 32년째군요. 자연을 벗삼아 화필로 뽑아낸 '땅의 정신'이 현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설악산 작가' 김종학 씨(74)가 화업 60년의 결과를 전시장에 풀어놓는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9일부터 6월26일까지 회고전을 펼치는 그는 "자연을 열심히 관찰하지 않는 화가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며 "눈 앞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김종학표' 꽃 그림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그의 회고전에는 1950년대 후반 추상화 작품부터 1980년대 이후 설악산 그림까지 그의 대표작 71점이 걸린다. 가로 8m,세로 3m인 1000호 크기 대작은 물론 미국에서 생활하며 딸에게 보낸 편지 소품과 목판화,미공개 인물화도 포함됐다.
1979년 설악산으로 들어간 그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방식으로 그려보겠다"고 결심한 후 그린 산 시리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왜 하필 설악산이었을까. 그는 "자질구레한 감정이 없고 오직 덩어리로 느낄 수 있는 야생적인 힘과 꿈,거기에 남성적인 호쾌함이 넘치는 신명의 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고갱에게 타히티,엔젤 아담스에게 요세미티가 있었다면 저에겐 설악산이 있습니다. 30여년 전 전위적인 실험정신과 추상의 논리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죠.그림이 더이상 '이념의 노예'가 돼선 안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당시엔 색이 없는 추상화가 대세였는데 그들과 다른 그림을 그렸더니 '이발소 그림'이라고 폄하하더군요. "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그의 작품은 그야말로 색채의 향연장이다. 설악산의 꽃무더기와 숲을 마구 짜낸 물감으로 찍어바르면서 현란한 색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피어나는 봄꽃과 시드는 가을꽃,눈을 가득 이고 있는 겨울 설악의 준령이 생생하다. "그림에 색채가 없다는 것은 표현의 절반을 포기하는 겁니다. 그림은 놀이지요. 화가는 자연을 잉태하고 산고를 거쳐 작품을 낳는 존재입니다. "
그는 "설악이라는 지리적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인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며 "꽃,풀,새,나비 등 소재의 융합을 통해 거대한 자연의 노래를 응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람료 어른 3000원.(02)2188-60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