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BizⓝCEO 기획특별판 입니다 >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유럽 지역에서 '트라이얼 밴스(Trial Vans)'를 운영하고 있다. 이 밴은 약 1000켤레에 달하는 운동화를 싣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있는 공원,호숫가 등에 예고 없이 멈춘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양한 신발 중 자신이 선호하는 모델을 골라 신고 조깅을 할 수 있다. 물론 무료다. 신발을 반납할 때 연락처와 이용했던 운동화에 대한 의견만 적어내면 된다.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마케팅 기법의 뒤에는 목소리가 커진 소비자들이 있다. 소비자는 자신의 의견을 내놓으므로 그들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하는 제품의 기획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기업도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제품을 개발 · 생산하면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효과적이다.

그 예로 서울우유는 우유팩에 유통기한과 제조일자를 동시에 표시하는 방식을 채용해 호평을 받았다. 자칫 대량의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한 계획이었으나 실시 이후 서울우유는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게다가 매출도 제조일자 표기 시행 전 대비 15% 증가하는 효과를 거뒀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으로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한 결과다.

이제 기업이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생산해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 공유가 신속하게 이뤄져 소비자의 힘이 더욱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곧 기업의 실패로 이어진다.

애플이 전자업계 1위였던 소니를 따돌린 것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었다. 내게 필요한 콘텐츠를 얻고자 했던 소비자의 요구를 이해하고 제품에 반영하는 애플의 노력 때문이었다.

이렇게 소비자의 인정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기업이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소비자의 특성은 무엇인가.

먼저 소비자는 '솔직한 정보'를 원한다. 소비자들이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는 불신하지만 같은 입장에 있는 소비자의 사용 후기를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실제로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에서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리뷰의 영향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7.5%가 제품에 대한 고객리뷰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령층이 낮을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또한 전체 소비자의 80.3%는 제품 구매 시 구매후기 및 상품평 등의 리뷰를 항상 확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온라인 구매 시에는 무려 90.7%의 이용자가 고객리뷰를 확인한다고 답했다.

광고 역시 상품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의 '자기 전엔 먹지 마라. 이가 썩는다'는 초콜릿 광고는 상품의 이미지를 최대한 포장하는 대신 그것이 비록 단점일지라도 고유의 특성을 그대로 실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므로 오히려 더 차별화된다. 정직한 광고는 곧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면서 소비자를 사로잡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고전적인 것으로의 회귀' 현상이다. 디지털 시대,넘쳐나는 문화 콘텐츠와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 마케팅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옛것에 대한 향수는 더해간다. 디지털 및 테크놀로지와 고전적인 클래식 콘텐츠들이 결합돼 새롭게 재해석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영국 '팻덕'의 요리사 헤스톤 블루멘탈은 요리 재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최상의 맛을 끌어내는 '분자 요리법'으로 유명하다. 그는 최근 분점을 오픈하며 1720년대의 칠면조 푸딩이나 1820년대의 오이케첩 등 15세기부터 20세기 재료나 레시피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 기술과 결합시킨 역사적 요리를 선보였다.

이렇게 디지털과 고전적인 것이 서로 겹쳐지는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이를 즐기는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디지털과 클래식을 조화롭게 믹스해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벨기에의 자동차 제조사 임페리아가 브뤼셀 오토쇼에서 공개한 스포츠카 'GP'는 4기통 터보 엔진으로 212마력을 내며 전기 모터로 134마력을 추가하는 최신 기술의 차량이다. 그러나 겉모습은 마치 1960년대의 골동품을 보는 듯하다. 이 차는 전기 자동차의 최첨단 기술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찬사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안티 스마트'에 대한 욕구에 주목해야 한다. 스마트 풍요 시대에서 기계는 점점 더 스마트해지지만 정작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신,감각,감성 등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균형이 잡히지 않은 환경에 놓인 소비자들은 안티 스마트에 대한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인터넷 발달로 주변에서 사라지는 15가지'를 선정했는데, 그 중 '9 to 5'와 '휴가'가 눈에 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웹사이트 접속이 가능해지면서 9시간의 정규 근무시간 개념이 무너지고 휴가를 가서도 인터넷으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휴가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를 겨냥하여 '생각을 버리는 것'이나 '여유를 갖는 것'에 대한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등 스마트와 안티 스마트를 오가며 현실의 삶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스마트한 현실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의 개발이 필요하다.

실제로 한 외국 회사는 업무 전화로 제대로 된 휴식을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휴대폰을 맡겨놓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렇게 기업은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을 연구해 컨셉트를 창출하고 소비자가 이에 만족하거나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해 그것이 제품 생산에 반영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