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황제' 루이비통 첫 출품
클래식 모델 재해석한 제품 많고
중국인 겨냥…시계 크기 작아져
보수적인 롤렉스도 세라믹 소재
명품업계의 '큰손'으로 꼽히는 일본(대지진)과 중동지역(리비아 전쟁)에 불어닥친 초대형 악재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얘기였다. '명품의 블랙홀'로 떠오른 중국 덕분에 '시계의 나라' 스위스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16만㎡(4만8400평)에 이르는 박람회장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10만여명의 바이어와 시계 마니아들로 가득 찼다.
◆호황 맞은 시계산업
올해로 39회를 맞은 세계 최대 시계 · 보석 박람회인 '바젤월드'가 지난 24일부터 8일간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 박람회에는 오메가 쇼파드 등 1892개 시계 · 보석업체들이 지난 1년 동안 공들인 '작품' 수천점을 들고 나왔다. 국내 최대 시계업체인 로만손도 고급 라인을 재정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위스의 작년 시계 수출액은 162억스위스프랑(19조7294억원)으로,한 해 전에 비해 22.1% 늘었다. 실비에 리터 바젤월드 총괄디렉터는 "스위스 시계업계는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만난 최성구 스와치코리아 사장도 "일본 지진이 글로벌 시계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중국의 성장세가 워낙 가파른 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의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상당 기간 고급시계 시장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명품의 황제'로 불리는 루이비통이 바젤월드에 처음 참여했다. 2002년 시계 분야에 뛰어든 루이비통이 10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끝내고,시계의 명품 브랜드들에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업계에선 해석하고 있다. 행사장에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직접 참석해 힘을 실어줬다.
◆세라믹 소재 유행
올해 바젤월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는 '네오 클래식'이다. 브라이틀링은 대표 모델인 '크로노맷01'을 업그레이드한 '크로노맷 GMT' 모델을 공개했다. 이 회사의 두 번째 자체 무브먼트(동력장치)가 탑재된 게 특징이다. 론진은 아예 1950년대 스위스 비행기 조종사들을 위해 한정판으로 만들었던 시계(24아워스)를 재생산했으며,티쏘는 자사의 첫 다이버 워치였던 '시스타'를 '시스타1000'으로 개선해 내놓았다.
최근 몇 년 새 커지기만 하던 시계 크기도 멈췄다. 남성시계는 지름 40~46㎜,여성시계는 34~40㎜가 주류를 이뤘다. 육일영 신세계백화점 시계 바이어는 "중국인들의 선호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며 "중국인들은 점잖은 모델을 선호하며 서양인에 비해 손이 작기 때문에 너무 큰 시계는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소재에서는 세라믹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보수적인 롤렉스마저도 시계 테두리를 세라믹 소재로 덮은 모델(데이토나)을 내놨을 정도다. 세라믹 전도사인 라도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세라믹 시계인 '트루 신(thin)'을 선보였다. 두께(쿼츠 기준)가 남성용은 5㎜,여성용은 4.9㎜에 불과하다. 샤넬은 이번 박람회에서 블랙과 화이트에 이은 'J12' 모델의 세 번째 색상을 공개했다.
오메가는 '레이디매틱' 모델에 들어간 밸런스 스프링을 실리콘 소재로 만들었다. 실리콘은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일반 부품을 사용할 때보다 오차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복잡하거나 파격적인 모델
불가리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라고 자부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15분마다 해당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그랑 소네리'와 '투르비옹'(중력의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퍼페추얼 캘린더'(윤년까지 인식해 날짜를 표시하는 장치) 등 최고급 기술을 한데 담았다. 가격은 20억원 안팎.
율리스나르덴은 시계의 핵심 부품인 '앵커 이스케이프먼트'(시계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톱니바퀴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닻 모양의 장치)를 다이아몬드로 코팅한 실리시움(규소의 부산물)으로 만든 제품을 선보였다. 쇼파드는 태엽을 끝까지 감으면 9일 동안 작동되는 기계식 시계(L.U.c.콰트로)를 공개했다. 이를 위해 일반 시계보다 2배 이상 많은 4개의 배럴(태엽을 감을 때 조여지는 스프링이 담기는 통)을 장착했다.
디젤은 온도에 따라 시계줄의 색상이 변하는 제품을 공개했다. 녹색 시곗줄을 20초 동안 잡고 있으면 체온에 의해 온도가 오르면서 노란색으로 바뀐다.
바젤(스위스)=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