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개정 논의에 광역의회도 '가세'
"형평성ㆍ의회발전" vs "금권로비에 취약"

"지방자치가 뿌리내리면서 광역의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주민 대표인 광역의원에게도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후원회를 허용해야 한다." (충남도의회 이진환 운영위원장)

"광역의원들이 후원회 구성을 허용해 달라고 건의하기에 앞서 주민을 위해 얼마나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진보신당 대구시당 이연재 위원장)

광역의원 후원회 구성을 허용하나, 마나?

기업ㆍ단체가 정당에 정치후원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을 놓고 정치권에서 논란을 빚는 가운데 전국 시ㆍ도 의회 의원들까지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에 뛰어들었다.

전국 시ㆍ도 의회 의장협의회는 지난 23일 부산시의회에서 임시회를 열고 광역의원도 국회의원 등과 마찬가지로 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 건의안을 채택했다.

의장협의회는 이달 중 이 건의안을 국회에 전달해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해줄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지방 정치의 발전을 위해 '허용돼야 한다'는 의견에서부터 지방의회마저 '금권 로비'가 판을 치는 무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광역의회 후원회 왜 요구하나 = 시ㆍ도 의회가 이처럼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뭘까.

25일 전국 시ㆍ도 의회 등에 따르면 선출직 공무원 간 형평성 문제와 지방 정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장치 마련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유권자의 지지를 통해 신분이 규정되는 선출직 공무원 가운데 유독 광역ㆍ기초 의원 등 지방의원에 대해서만 후원회 구성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자, 국회의원,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등은 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지자체장 후보자는 각각 선거비용 제한액의 100분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후원회를 통해 모금할 수 있다.

또 국회의원은 1억5천만원까지 같은 형태로 모금이 가능하다.

전국 시ㆍ도 의회 의장협의회는 현행 정치자금법이 지방의회의 의정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강조하고 있다.

광역의원 후보자의 음성적인 정치자금 수수를 조장하고 유능한 정치 신인의 자유로운 정치권 진입을 차단해 결과적으로 지방의회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 찬반 엇갈려=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지병문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후원금 제도를 허용하는 상황에서 광역의원에게만 이를 금지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정연정 교수도 형평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지방의원들이 후원회 조직을 만들 경우 지역 유권자들의 참여활동이 건강하고 투명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가세했다.

반면 울산대학교 행정학과 이병철 교수는 "음성적인 모금 활동을 제도권 안으로 불러들여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동안의 잘못된 정치자금 모금과 집행의 행태를 반복하거나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권력감시운동본부 박미연 팀장은 "광역의원의 정치자금 모금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고, 울산시민연대 김지훈 상근 활동가는 "특정 정당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지방의원이 로비에 취약해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광역의원 후원회 문제를 '광역의회 보좌관제' 도입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산대 행정학과 강재호 교수는 "정치자금 모금을 허용하는 것보다 보좌관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광역의회에서 전문위원 등이 지원하고 있지만 시ㆍ도 의원이면 1명 정도의 보좌관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작용 막을 대책은 있나 = 광역의원 후원회 허용에 신중론을 펴는 측은 대체로 후원금의 투명성 확보와 특정인 또는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금권로비를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 마련에 관심을 보였다.

후원회 허용에 앞서 이런 견제장치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울산시민연대 김지훈 상근 활동가는 "합법을 가장한 청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가뜩이나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유권자의 반발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권력감시운동본부 박 팀장은 "후원회를 허용하게 되더라도 후원회를 통해 거둬들이는 자금의 사용처 제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금홍섭 사무처장은 "투명한 정치자금을 조달하려면 더 강력한 지도와 관리ㆍ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전국 시ㆍ도 의회 의장협의회는 이와 관련, 후원회의 기부금 한도를 정하고 설치기간을 제한하면 후원회 남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자구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건의안 국회정개특위 전달..전망은 "글쎄" = 전국 시ㆍ도 의회 의장협의회는 조만간 광역의회 후원회 허용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정치자금법 개정 건의안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전달할 계획이다.

중앙 정치권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석패율제 도입' 등 정치 현안과 함께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해 달라는 취지다.

지방의원 가운데 기초의원의 경우 광역의원과 달리 후원회 허용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시ㆍ도 의회의 후원회 허용 요구가 관철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서울시의회 김명수 운영위원장은 "무엇보다 중앙 정치권의 의지와 국민 정서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충남도의회 이진환 운영위원장은 "지방의원들의 정치적 기반이 약하고 지방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틀에 가둬 두려는 사회적 시각이 워낙 강해 후원금 제도가 당장 허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진발 정찬욱 이은파 박창수 전승현 류성무 홍창진)

(전국종합=연합뉴스) tjd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