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도요스(豊洲)에 있는 슈퍼마켓 아키오 매장.24일 오전 음료수 판매대에 유독 생수 칸만 텅 비어 있다. 와타나베 신지 점포장은 "어제 오후 도쿄도에서 수돗물의 방사능 오염 결과를 발표한 이후 재고로 갖고 있던 생수가 순식간에 다 팔렸다"며 "본점에서도 재고가 달려 언제 생수를 공급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의 수돗물에서 발견되면서 일본이 때아닌 식수난을 겪고 있다. 특히 도쿄도 등이 "유아(0~1세)에겐 수돗물을 먹이지 말라"는 발표를 내놓자 불안해진 시민들이 생수를 사재기해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선 생수가 자취를 감췄다. 이에 따라 도쿄도는 유아가 있는 8만가구에 550㎖짜리 생수 3병씩을 이날 긴급 배급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이 늦어질 경우 도쿄 시민들의 식수난 식품난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수돗물 오염…식수난 가중

일본 정부는 지난 23일 도쿄시내 수돗물에서 유아들의 섭취 기준량을 초과하는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된 데 이어 24일엔 도쿄 인근의 사이타마와 지바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사이타마와 지바현도 도쿄도와 마찬가지로 수돗물을 유아에게는 먹이지 말 것을 주민들에게 권고했다.

사이타마현의 경우 정수장 수돗물에서 유아의 음용 기준치 100Bq(베크렐)을 초과하는 물 1㎏당 120베크렐의 요오드가 검출됐다.

이에 따라 인구 1300만명의 도쿄는 물론 사이타마 지바 등 수도권 일대에서 생수 등 식수가 품절사태를 빚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시나가와(品川)구 대형 슈퍼에서는 2ℓ들이 페트 6병이 든 물 17상자가 이날 오전 10분 만에 다 팔렸다. 각 슈퍼마켓에서는 1인당 판매량을 페트 한 병으로 제한하는 등 '긴급 조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6세 이하 세 자녀를 둔 한 가정주부(35)는 "TV에서 뉴스를 보자마자 인근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2ℓ들이 페트 6병과 500㎖ 페트를 바구니에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이 가정주부는 "아이들 우유는 물론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데도 수돗물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의 보건당국은 도쿄 수돗물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이 유아의 음용기준치를 2배 초과했지만 어른에게는 건강상 영향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선뜻 안심을 못하고 있다. 설사 건강엔 당장 영향이 없다고 해도 찜찜해서 수돗물을 못 마시겠다는 것이다.

◆1호기가 가장 위험한 상황

후쿠시마 원전에선 외부로부터 전력 공급선이 연결되긴 했지만, 냉각시스템을 본격 가동하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쓰나미로 물에 잠겼던 냉각장치의 수리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은 현재 1~4호기의 냉각시스템 가동을 위한 점검과 수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와중에 온도가 급상승한 1호기 원자로에 물을 주입한 이후 바깥쪽 격납용기 압력이 높아져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됐다.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 · 보안원에 따르면 1호기 압력용기의 바깥쪽 온도는 23일 오전 6시께 약 400도에서 24일 오전 5시께 243도로 내려갔다. 소방펌프를 이용해 원자로 노심에 바닷물을 집어넣은 결과다. 하지만 압력용기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의 압력은 23일 오전 6시께 0.250㎫(메가파스칼)에서 0.400㎫로 치솟았다.

마다라메 하루키 일본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3일 밤 기자회견에서 "수소폭발한 1호기의 핵연료가 용융(meltdown)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2호기나 3호기에 비해 위험한 상태"라며 "원자로 내부의 온도,압력의 이상 상승이 계속돼 가장 위험한 상황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원자력안전 · 보안원은 이날 후쿠시마 원전 3호기에서 복구 작업을 하던 작업자 3명이 방사선에 노출됐고,이 중 2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