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바람'을 타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놓고 이건희 삼성 회장과 한판 붙었고,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연이은 비판에는 "일하지 말라는 뜻 아니겠느냐"며 사퇴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어디까지 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과 맞물려 정 위원장의 행보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힘겨루기를 의도한 방향대로 끌어가거나,청와대 · 여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길을 찾아 떠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23일 대기업의 이익을 협력사와 나누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정 위원장의 발언을 현장 취재기자가 처음 보고해왔을 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국무총리까지 지낸 경제학자가 법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안을 내놓을 리 없다는 의문에서였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이날 배포한 '위원장 모두 발언'이라는 자료를 다시 살펴보니 중간쯤에 협력사 이익 공유제(Profit Sharing)란 용어가 눈에 띄는 고딕으로 쓰였고,위원회 안에 실무위원회를 설치해 이를 '심도 있게 연구 검토할 것'이라는 간략한 일정이 들어있었다. 정 위원장이 끼워 넣은 것으로 알려진 몇 줄 문구가 지난 20여일 동안 논리적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며 마치 그의 중소기업 지원 철학과 소신인 것처럼 부풀려진 꼴이다.

따지고 보면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민간기구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이익공유를 비롯한 대 · 중소기업 간 협력방안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협의하는 걸 탓할 수는 없다. 정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자신의 브랜드로 삼아 고집스레 밀어붙이면서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그의 진로에 따라 위원회는 존폐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처했다. '정운찬 위원회'라는 지적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도 지난 주말 "국내 대기업이 정부 부처보다 더 관료적이고 단기 성과에 급급해 2~3년도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독설을 퍼부으며 '대기업 두들겨패기' 대열에 가세했다. "2년간 고환율로 좋았지만,대표 기업들이 수익을 많이 낸 것이 독약이 될 것"이라는 말에 기업인들은 어이가 없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반응을 숨기지 않는다.

곽 위원장은 한술 더 떠 기업의 지배구조 등과 관련해 '주주자본주의와 전문경영인 체제에 변화를 가져 올 새 방안'을 다음달 중 발표할 것임을 내비쳤다. 대기업의 이익은 고환율 정책에 힘입은 것인데 기업인들이 마음대로 쓰고 있으니 정부가 개입하고 칼을 들이대는 게 온당하다는 생각이라면,초과이익공유제보다도 위험하다. 그는 미래기획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는 현안들은 이 대통령의 생각과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장담해 왔다. 미래기획위원회가 기업활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곽승준 발(發) 대기업 공격도 만만치 않게 벌어질 판이다.

일본 대지진으로 서플라이 체인이 무너지는 비상경영상황에서 정부와 기업 간 불필요한 충돌은 물론 바람직스럽지 않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는 기업인들은 갈수록 줄고 있다. 위원장들의 '탈출구 전략'과 '묘한 인식'이 "MB정부의 경제정책은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낳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유근석 산업부장 y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