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 폭발 사고를 계기로 원전의 시대는 끝났다. "(제레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 "자연재해처럼 인간이 막을 수 없는 것이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원전 건설 계획과 일정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를 계기로 글로벌 원전 산업이 기로에 섰다. 온실가스를 방출하지 않는 효율적인 '청정 에너지'로서 위상에 큰 타격을 입은 원전산업의 전망은 엇갈린다. 세계 각국이 잇따라 원전 정책을 재점검하고,신규 건설계획을 보류하면서 '원전 홀로코스트(대학살)'가 임박했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원전 르네상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글로벌 전력 수요를 담당할 대안으로는 원전이 유일하다는 현실론도 여전히 적지 않다.

◆세계 전력의 13.5% 차지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발전 수단이기도 한 원자력은 전 세계 전력 생산량의 약 13.5%를 담당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현재 전력 소요량의 4분의 1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나라가 16개국에 이른다.

원전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프랑스.59기의 원전을 통해 전체 전력 수요의 4분의 3가량을 충당하고 있다. 한국(21기)과 벨기에(7기) 스웨덴(10기) 스위스(5기) 우크라이나(15기) 등도 자국 전력 수요의 3분의 1 이상을 원전에 의존한다. 일본(55기)과 독일(17기) 등도 전력 수요의 4분의 1 이상이 원전이다. 총 104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미국은 세계 최다 원전보유국으로 전체 전력생산의 5분의 1가량을 원자력에 기대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1월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432기이며 이곳에서 생산하는 전기 출력량은 3억8915만㎾에 달한다. 한국은 원전 숫자로는 세계 5위(21기),전력 생산량으로는 세계 6위(1771만㎾)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와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오랫동안 주춤했다. 1975년 22기가 건설됐던 원전은 스리마일 사고 직후인 1980년 7기 건설에 그쳤다. 이후 1985년에는 33기가 건설됐다. 하지만 체르노빌 참사를 겪은 지 10년이 흐른 1995년에는 5기를 건설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부활 직전에 닥친 日 참사

오랜 침체기를 맞이했던 글로벌 원전 산업은 최근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른 속도로 살아나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1월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총 66기,건설 예정인 원전이 74기에 달할 정도로 원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6년 2조7000억?i였던 전력생산량이 2015년엔 3조?i,2030년에는 3조8000억?i로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원전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지구온난화가 주요 이슈가 된 상황에서 온실가스 등 오염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데다 효율성이 매우 뛰어나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유가를 비롯해 각종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점도 원자력에 눈을 돌리게 했다. 1시간 동안 1㎾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연가스 4센트,석탄 2센트,원자력이 0.5센트다.

이에 따라 지난해 미국은 스리마일 사고 이후 중단했던 원전 건설을 재개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이탈리아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새 원전 건설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영국과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지난해 기존 원전 수명을 연장하기로 하는 등 원전 정책에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특히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베트남 터키 등 개발도상국들이 가세하면서 원전 시장에 장밋빛 전망이 퍼졌다. 중국은 무려 26기의 원전을 지으며 원전 강국 도약을 꿈꿨다.

그러던 것이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분위기가 급변했다. 독일을 필두로 영국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이 △노후 원전 가동 중단 △신규 원전 건설 허가 보류 △원전정책 재검토 등에 나섰다. 미국에서도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도 전격적으로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승인을 전면 보류했다.

◆만만찮은 대안부재론

그러나 일본의 원전 참사로 원전산업이 종언을 고했다고 단언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햇빛이 약한 곳에서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없고,바람이 없는 곳에서 풍력 발전을 활용할 수 없듯이 각종 신재생에너지의 한계는 분명하다"며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원자력 의존 비중이 줄어든다면 부족분만큼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풍력이 원자력과 똑같은 에너지를 내려면 원자력보다 60배나 많은 토지를 필요로 할 만큼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원자력 로비스트들이 일본 사고 이후 의회를 대상으로 원자력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대대적인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며 "수십년 만에 찾아온 대형 원전 수주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와 터키 벨라루스 등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원전 건설 사업을 그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