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저 방법밖에는 없나. ' 17일 오전 NHK는 수시로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상공을 생중계했다. 30㎞ 바깥 카메라에 비쳐진 현장에는 헬리콥터 한 대가 희미하게 잡혔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원전 3호기 위로 냉각수를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으로 보였다. 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하얀 포말.헬리콥터는 분주히 오가며 4호기에도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이 작전으로 원전 내부의 온도가 내려가거나 방사성 물질 검출량이 떨어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복구작업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제어됐다'는 징후는 없다. 오히려 새로운 악재만 쌓인다. 사용 후 핵연료봉(폐연료봉)을 쌓아둔 4호기의 수조(水槽)가 말라 버렸다는 경고부터 제2의 체르노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졌다. 이제 '결단'만 남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수대'가 생명을 담보로 생명을 지켜야 하는 고뇌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얘기다.


◆4호기가 위험하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이날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 내 폐연료봉을 보관하는 수조의 물이 남아 있지 않다고 경고하면서 핵 재앙에 대한 공포가 확산됐다. 폐연료봉 파손과 이로 인한 방사성 물질 대규모 확산을 막을 수 있는 통제장치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4호기에서는 그동안 폐연료봉의 열 때문에 화재가 두 번 발생했다. 다른 원자로는 격납용기라는 1차 보호막이 있지만 4호기는 무방비다. 이런 점이 오히려 냉각수 주입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나마 근접 살포를 할 수 있을 때 얘기다. 폐연료봉이 산화하면 대량의 방사선을 방출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핵반응이 일어나 대폭발과 같은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미 뚫려 버린 외벽을 통해 요오드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곧바로 대기 중으로 퍼진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우려에 대해 부인했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4호기의 폐연료봉 안에 물이 없다고 하는 얘기가 있었으나 여러 전문가들에게 물어본 결과 물이 줄어들었다는 보고만 들었다"고 말했다.

◆백약이 무효,시간만 흘러

일본 정부는 헬리콥터를 통한 냉각수 살포와 함께 물대포를 동원해 원거리에서 냉각수를 밀어넣는 작업도 여러 차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시청 기동대가 투입됐다. 원전 바깥에는 180여명의 소방인력도 대기했다. 핵분열 속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감속재인 붕산을 투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붕산 주입은 냉각수 살포보다 더욱 정밀해야 효과를 본다. 그만큼 더 가까이,더 많은 사람이 접근해야 가능하다.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측정치에는 큰 변화가 없다. NHK는 "냉각수 살포작업 이전인 오전 9시40분에 측정한 방사선량은 3782마이크로시버트(μSv)였고 작업 이후인 10시20분에도 3752μSv로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보도했다. 도쿄전력은 망가진 전력 설비의 복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도쿄전력은 "새 전력선 설치가 거의 완료됐다"며 "가능한 한 빨리 전력 공급을 재개할 수 있게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추가적인 위기 징후

지진 발생 당시 정기점검 중이던 5,6호기도 안전한 상태는 아니다. 연료 보관 수조의 냉각 기능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5호기 수조의 온도(16일 측정치)는 섭씨 63도로 전날보다 5도 올랐고,6호기도 4도 높은 60도를 기록했다. 도쿄전력은 "이대로 수온 상승이 계속될 경우 5,6호기도 3,4호기처럼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전 인근에서 중성자가 발견됐다는 뉴스도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정문에서 15일 오전 1시30분과 1시40분 각각 시간당 0.02μSv와 0.01μSv의 중성자가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중성자는 핵분열이 일어날 때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이다. 일각에서는 4호기에서 마침내 핵분열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우라늄이 있는 원전 근처에서 미량의 중성자가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떤 단정적인 해석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대지진에 이어 후지산 분화 우려까지 나왔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나고야대 화산 · 방재연구센터 교수의 말을 인용해 "화산의 지하는 파괴되기 쉽기 때문에 걱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교수는 이어 "후지산은 폭발한 지 300년이 지나 언제 분화해도 이상하지 않다"며 "이번 지진이 도화선이 됐을 가능성이 있어 추이를 관찰 중"이라고 덧붙였다.

■ 중성자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하는 물질.양성자나 전자와 달리 전기를 띠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중성자로 불린다. 원전 연료로 쓰이는 우라늄의 원자핵은 외부에서 중성자를 흡수하면 둘로 쪼개지며 핵분열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2~3개의 중성자가 엄청난 속도로 분출된다. 원자로는 감속재로 중성자의 성질을 적절히 제어해 에너지를 얻는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