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는 지난 11일 발생한 대지진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대지진 발생 1주일째를 맞는 17일에 이곳은 아직도 대참극의 현장 그대로다. 외부인들에겐 충격 그 자체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호쿠(東北)지방 최대 도시가 지진 발생 이후 1주일째 기능이 완전히 마비돼 있다.

외부로 통하는 관문인 센다이역은 공항과 더불어 며칠째 폐쇄돼 있다.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손님을 맞아야 할 미쓰코시백화점을 비롯한 역 인근의 상점들도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끈으로 빙 둘러쳐져 아예 출입이 통제됐다.

일본 동해안 가운데서도 참치가 많이 잡히는 곳답게 출입구에 참치 모형을 내건 스시집들이 보였지만 이런 식당들도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고베,삿포로와 더불어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손꼽는 3대 도시 센다이,그러나 지금 이곳에선 불 켜진 가게조차 찾기 어렵다. 도로는 곳곳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센다이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탔던 택시의 기사는 "운전 중이던 택시가 좌우가 아니라 아래위로 흔들린 것은 난생 처음"이라며 지진 당시 위기 상황을 되돌아봤다. 그는 "지금은 택시 연료가 부족해 택시영업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한치 앞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13일부터 도쿄 인근 지바현에서 북상한 지진 피해 취재는 공포의 대장정이었다. 곳곳이 참극의 현장이었다. 기자들에겐 그 중 길거리에서 잘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센다이만 해도 시내 호텔이란 호텔은 모두 샅샅이 뒤졌지만 문을 닫아버렸거나 만원이었다. 앞서 유령도시 같았던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에서와 비슷한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택시기사를 가이드 삼아 30여분간 헤맨 끝에 겨우 찾아낸 유일한 숙박지는 러브 호텔."더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주인은 난색을 표했지만 그나마도 감지덕지였다. 취재를 위해 동일본 열도를 며칠간 누비는 동안 지진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의 진앙지에서 가까운 센다이에서 느끼는 강도는 달랐다. 호텔 주인은 "추가 지진으로 안에 갇힐 수도 있으니 방문을 닫지 말아달라"며 아예 방 열쇠를 건네주지 않았다. 밤엔 더 불안했다. 16일 밤에도 밤새 지진이 세 차례나 발생해 침대를 뒤흔들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17일 아침 눈을 뜨니 오전 6시30분.센다이 시내에서 아침 식사는 불가능했다. 식당은 물론이고 음식거리가 준비된 편의점이나 가게도 없었다. 대참극의 현장에선 배고픈 줄도 몰랐다.

문제는 쓰나미가 할퀸 해변 지역은 출입 자체가 통제돼 직접 취재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해변 주변까지 가서 살펴보는 정도에서 아쉬움을 안고 되돌아서야 했다. 취재진들이 대부분 '안전지대'로 이동하는 분위기 속에서 야마가타현으로 복귀를 서둘렀다. 피해 지역에서는 타지역으로 이동할 수단을 찾는 것 또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센다이역 주변에는 곳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긴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려는 탈출 러시다. 선진국 일본이라지만 절대 위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취약한 현대사회의 한 모습이었다. 부모와 함께 기자 뒷줄에 서 있던 다카하시 노조미 씨(쓰루분카대 3학년)는 "니겟테이루(도망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봄방학을 맞아 지난 5일 고향을 찾았다가 난리를 겪었다. 당분간은 친척집으로 피신 갈 예정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면서도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버스 안 옆자리의 다케다 씨에게 피해 상황을 물었다. 출장을 겸해 고향에 왔다는 그는 "고향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아버지는 찾았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행방불명"이라며 이내 고개를 떨궜다. 승객 중에 그나마 약간은 밝은 표정의 신사는 캐논S&S 도몬 게이지 사장이었다. 그는 "직원들 힘내라고 2,3일치 비상식량을 직접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캐논 카메라를 꺼내 센다이 현지 직원들에게 전달했다는 컵라면 빵 등 먹을거리를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석유가 없어 영업망은 전혀 가동이 안 되지만 현지에서 채용한 직원들이어서 달리 갈 곳도 없는 딱한 처지라는 설명이었다. 예상대로 야마가타 공항은 만석이었다. 며칠째 계속 내린 눈으로 도로 사정도 곳곳에서 어려움이 컸다.

센다이=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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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흑 세계로 변한 센다이, 인구 100만 도시 완전 마비

센다이로 이동하기 위해 기자가 동해 쪽 니가타현을 출발한 시간은 16일 오후 4시.유일한 이동수단인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야마가타현에 도착하니 마침 센다이시까지 가는 연결버스가 한 대 대기하고 있었다. 눈보라를 헤치고 우오산맥을 넘는 산길은 아찔한 고갯길이었다. 버스 승객들은 한결같이 극도의 긴장감을 보였다. 이들 속에서 기자도 눈도 못 붙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방사선 누출 위험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니 위험지역에서 서둘러 빠져나오라"는 본사 데스크의 연락이었다. 하지만 대표적 피해 현장인 센다이를 앞에 두고 바로 복귀할 수는 없었다. 버스에 몸을 실은 지 1시간30분여.센다이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주변은 암흑 세계였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역은 동부 해안 지대여서 야마가타현에 인접한 센다이 서부는 사정이 나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착각이었다.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 센다이도 사실상 마비된 도시였다.

야마가타 · 센다이=최인한 기자 J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