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속보] 황혜민·엄재용 커플과 본 영화 ‘블랙 스완’

국내 개봉 3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영화 ‘블랙 스완’.이 영화는 뉴욕 발레계를 배경으로 성공을 꿈꾸는 발레리나들이 펼치는 매혹의 스릴러다.주역을 맡은 발레리나 ‘니나’가 겪어야 하는 정신적 강박과 완벽을 향한 싸움을 감각적 영상으로 만들어냈다.하지만 해외 발레리나들의 평은 정 반대로 갈린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질리언 머피는 “영리하게 계획된 창의적인 영화”라고 평가한 반면 영국로열발레단의 타마라 로호는 “모든 발레영화의 클리셰를 따르는 게으른 영화”라고 혹평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간판스타 황혜민 엄재용 커플.실제 연인 사이이기도 한 이들과 함께 지난 10일 저녁 영화 ‘블랙 스완’을 봤다.지난 8년 간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을 맞춰온 이들은 공연 전후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파트너.영화가 끝나고 주인공 ‘니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황혜민은 두 번째,엄재용에게는 첫 번째 관람이었다.

▼열흘 뒤 있을 ‘돈키호테’ 4월 ‘심청’ 6월 ‘디스 이즈 모던’등 세 작품을 동시에 준비한다고 들었어요.긴장이 최고조일 것 같은데 영화처럼 역할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 심한가요.

황=이 영화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실망했어요.저렇게까지 과장되게 표현했어야 하나 싶어서.오늘 다시 보니 진짜 저렇게 될 수도 있겠다 공감되더라고요.흑조와 백조,두 역할을 다 해야 하니까.저도 처음 ‘백조의 호수’ 할 때 영화 속 니나처럼 주변 사람들이 백조만 보인다고 하고,스스로도 그렇게 느껴서 스트레스가 컸었죠.
엄=공연 며칠 놔두고 우리끼리 모이면 서로 ‘정신병자들’이라고 말해요.(웃음)어떤 일을 하더라도 스트레스가 오는 건 당연하지만 각자 강박이 없는 건 아녜요.

▼배역을 놓고 질투와 시기,단장을 포함한 권력자와의 갈등이 실제로 있나요?

황=그럼요.엄청나죠.말로 다 못해요.저는 지금이야 그렇지면 예전에 솔리스트들 사이에서 한명이 주요 배역 맡으면 수군수군대고 난리나죠.“쟨 하는데 난 왜 못해?”이러면서.그런 거 다 신경 쓰면 춤 못 춰요.

▼영화 속 ‘니나’는 평상복도 분홍색,흰색만 입어요.실제로 발레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가요.친구 역을 맡은 자유분방하고 도발적인 릴리와 비교되던데요.

황=절대 안 그래요.엄마한테 착한 딸,분홍색만 입는 얌전한 여자,다 그렇진 않아요.우리 클럽도 가고 술도 마시고 그래요.니나는 남들 하는 거 안하다가 한번에 푹 빠진 거잖아요.
엄=저는 골프 치는 것도 좋아하고,축구 야구 이런 운동경기 보는 걸 좋아해서 틈 나면 그런 걸 하죠.24시간 발레 생각만 하고 살진 않아요.

▼니나는 여성으로서,무용수로서 어느 순간 자신이 갖고 있던 틀을 깨고 나오잖아요.자신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요?

엄=두 번 있었어요.어릴 땐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춤만 췄는데 2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발레단에서 자리가 잡히고,알아보는 팬들도 생겼죠.책임감이 생기니까 스스로 달라졌죠.그보다 더 큰 변화는 2008년 발목 부상 이후 재활하던 때였어요.어느 순간 내가 병실에 누워있는데 과연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혼자만의 외로운 싸움,딱 1년반 걸리더라고요.

황=20대랑 30대랑 발레리나는 몸도 다르고 마음도 달라요.원래 발레리나가 동화 속 공주님만 생각하며 살잖아요.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30대에 꿈에서 딱 깨보면 정신연령도 그 나이 또래 다른 여자들보다 어려요.맨날 공주 역할만 하고 살았으니까.(웃음) 30대로 접어들면서 ‘오네긴’이라는 작품할 때였나봐요.어린 소녀가 3막이 되면 여인으로 바뀌거든요.춤도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원작 읽고 또 읽으면서 춤도 마음도 좀 자랐죠.

▼바로 옆에서 보니까 서로 노이로제 징크스 같은 거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엄=혜민씨는 토슈즈 징크스 있어요.오른쪽부터 신고 왼쪽 신는데,어쩌다 순서가 꼬여서 왼쪽 먼저 신으면 그날 무대는 영 망친데요.토슈즈 때문이 아닐텐데 왜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요.

황=재용씨는 김을 안 먹어요.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라나.공연날은 커피나 초콜렛만 먹고 공연해요.조금이라도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서 못 뛰는 느낌이라 그러고 무대에서 헛구역질도 하더라고요.이것도 일종의 강박이죠.아무 상관 없는데도요.

▼니나의 마지막 대사가 “난 완벽했어”잖아요.그런 비슷한 느낌 가져본 적 있나요?

황=완벽한 공연은 없다고 생각해요.자기만의 세계일 뿐이지.물론 발레에는 교과서가 있죠.스텝과 포지션,룰이 있지만 사람 몸이 다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잖아요.스스로 만족할 만한 공연은 있어도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공연,그런 건 없을 것 같아요.

엄=오네긴 첫 공연 때였어요.마지막 파드되(남녀의 2인무)가 굉장히 슬퍼요.인사 후 막이 한번 닫히고 다시 남자와 여자가 커튼 가운데로 뛰어들어와서 인사를 하는데 둘이 손잡고 계속 엉엉 울고 있었어요.

▼결국 니나는 어떻게 됐을까요.

엄=죽었을거야.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예술이지 완벽을 느낀 후에 뭘 더 할 게 있었겠어요.

황=죽진 않았을 것 같은데.아무것도 결론 내지 않은 결말이잖아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