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 시설물들이 잇따라 폭발하거나 격납고 손상이 확인되면서 체르노빌 사고와 같이 방사성 물질 대량 유출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상황으로만 본다면 이 같은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체르노빌 원전과 후쿠시마 원전의 구조가 다르고,노심 용융이 진행되더라도 섣불리 상황을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 유출의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격납고 균열의 의미는

후쿠시마 원전같이 비등수형 원자로의 격납용기에는 압력억제실이 있다. 원자로 내에 증기가 차 있기 때문에 증기압이 상승할 때 증기를 배출해 압력을 낮추고 물로 바꾸는 장비다. 즉 압력억제실 장비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원자로 내부 압력 통제에 실패했다는 얘기다. 앞서 수소 폭발 때에도 격납고는 이상이 없었고,원자로 내부 통제가 비교적 가능한 상황이었다. 성계용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리스크평가실장은 "격납고가 손상됐다면 노심 용융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며 "이제 관건은 핵연료(우라늄)가 원자로를 뚫고 나오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만약 노심 용융을 계속 막지 못해 핵연료가 녹아 원자로 바닥을 뚫고 나온다면 방사성 물질 대량 유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체르노빌 사태 재연될 가능성은

체르노빌 원전은 우라늄의 핵분열 속도를 제어하는 감속재로 물과 달리 흑연을 사용한 '흑연감속 비등수형 원자로'다. 감속재는 고속중성자를 흡수해 열중성자로 바꿔 핵분열 속도를 적절히 낮추기 위해 필요하다. 흑연 감속로는 설계상 큰 '보이드 계수'를 갖고 있다. 체르노빌 참사는 원자로 출력을 조정하는 제어봉을 다루는 과정에서 미숙한 조치가 반복돼 결국 원자로 출력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왔고, 이에 따른 증기 폭발이 원자로 폭발로 이어졌다. 체르노빌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격납고 같은 1차 방어막이 없었던 것도 차이점이다.

반면 비등수형 원자로인 후쿠시마 원전은 감속재로 물을 사용한다. 이번과 같은 비상사태로 비등수형 원자로 내 증기압이 갑자기 올라가면 물이 증기로 변하는 양이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음의 보이드 효과의 정반대 원리에 따라 원자로의 출력이 상승하게 된다. 즉 증기압을 조절하는 2호기의 '압력억제실'에 이상이 계속 생긴다면 노심 용융이나 추가 폭발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 원전과는 어떤 차이 있나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월성 원전을 제외하고 모두 가압경수로형(PWR)이다. 반면 후쿠시마 원전은 모두 비등수형(BWR)이다. 비등수형은 증기발생기가 따로 없고 원자로 안에서 직접 증기를 만들며 원자로 계통과 터빈 계통이 분리돼 있지 않아 사고시 방사성 물질 유출 가능성은 더 크다.

반면 가압경수로는 비등형경수로보다 원자로 계통의 전반적 압력이 높은 반면 원자로 계통과 터빈 계통이 분리돼 있고 증기발생기가 따로 있다. 그러나 강진 발생시 이 같은 설계 방식 차이는 의미가 별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 보이드계수

물을 냉각재와 감속재로 겸하는 원자로에서는 냉각재로서 물이 끓을 때 기포가 생기고 이에 따라 감속재로서의 역할과 노심의 출력 정도가 달라진다. 이 반응의 변화율을 보이드 계수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온도가 올라가서 냉각수가 많이 끓어 기포량이 증가,노심의 반응도가 감소했을 경우 '음의 보이드 효과'라고 말한다. 보이드 계수는 원자로의 안정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며 감속재 · 핵연료의 종류 · 노심 상태 · 감속재와 연료의 체적비 등에 의해 상당히 변한다. 보통 원자로 운전시 보이드 계수는 항상 음의 값을 취해야 한다.

◆ 감속재

핵분열시 튀어나오는 고속중성자를 열중성자로 바꿔 핵분열 속도를 적절히 제어하는 것.가압형경수로와 비등경수로에서는 냉각재와 감속재로 물을 사용한다.

◆ 열중성자/고속중성자

주위의 매질과 열적 평형상태에 있고 속도가 느린 중성자는 열중성자.고속중성자는 핵분열시 나오는 에너지를 받아 가속된 중성자를 말한다.